최영근 개인展

 

- 현대미술 ‘옻’을 입다 -

 

태초의 울림_옻칠, 자개, 색편_1200x1200x35mm_1997

 

 

갤러리 이안

 

2009. 5. 1(금) ▶ 2009. 5. 14(목)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153-5 이안과1층|042-220-5959

 

 

4월의 빛_옻칠, 색편, 금박_918x495x35mm_2002

 

 

최영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김광우 / 미술비평 

 

시각의 힘, 지각의 힘

우리는 물리적 힘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힘을 단지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이 세계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데 눈이 강력한 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체험은 상상과 물리적 행위 즉 바라보는 것으로 이뤄진다. 자연의 형태 자체들이 목적을 지닌 것으로 눈에 들어온다. 우아하고 능률적인 모양을 한 물고기를 예로 들면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물을 미끄러져 움직이도록 디자인 된 것으로 보인다.

만물이 환영이 아니며 동일한 방법으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힘은 실제인 것이다. 시각적 힘은 직감되거나 또는 눈으로 느낀다. 이런 차이를 화가는 반드시 인지해야 하고 동시에 시각적 힘이 나름대로 물리적 힘만큼이나 동일하게 실제라는 것도 알아야만 한다.

우리 모두 그림에 마력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가는 그의 혹은 그녀의 작품에 생명이 있고, 숨 쉬는 세계의 특성을 담기 바란다. 그림이 단지 재료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더라도 화가는 우리로 하여금 균형과 중력, 긴장과 운동으로 존재하는 삶과 관련된 것들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화가는 오로지 형태와 색을 형상화함으로서 그림을 그릴 뿐이다.

시각의 힘도 물리적 힘과 마찬가지로 법칙, 좀 더 느슨하게 말하면 형태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반응을 하도록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리의 지배하에 있다. 시각적 오브제들은 형태, 부호와 형상 그리고 부피로 이루어지므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재료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가를 설명해주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종일관 시각적 힘을 바라보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20세기 초 독일과 미국의 심리학자들 그룹의 문헌들을 통해 전개되었다. 당초 그들은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어떻게 지각되고, 자료가 감관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져 두뇌에서 체계화되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의 관찰과 실험에서 비롯된 이론들이 게슈탈트 심리학 학파 the Gestalt school of psychology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게슈탈트 Gestalt는 다소 번역할 수 없는 단어이며, 보통 영어로 ‘모양 shape’이나 ‘형태 form’로 번역하지만, 이 단어는 또한 형상 configuration, 패턴 pattern, 구조 structure, 전체 wholeness를 의미한다.

게슈탈트 심리학 학자들의 기본 전제는 시각적 이벤트가 이벤트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총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부분들은 상호작용하며, 그 상호작용이 그 부분들에 변화를 일으킨다. 부분들이 어떤 방법으로 합하여지고, 이런 방법이 부분들 자체들보다 더 인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가가 부분들을 합칠 때 그것들은 새로운 것이 되며, 사용된 형태와 색의 열거와는 다른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때때로 화가는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그 작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시각적 이벤트들을 단번에 전체로 지각한다. 보는 것은 자료의 조각들을 수집하는 과정이 아닌 것이다. 그 보다도 눈은 세부들에 의한 시각적 사실들이 아닌 그 부분들을 구성하는 전체적 패턴에 의한 큰 시각적 사실들에서 충격을 받는다. 지각은 지적이며, 지각이 시계 視界, 음향 音響, 그리고 객관적으로 체계화되지 않은 이벤트들을 체계화한다.

시각의 힘과 지각의 힘에 의한 진정한 느낌과 이해를 가지고 최영근의 작품을 감상하면 우리는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각각의 소리장치라는 것과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심포니를 연주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최영근은 이런 심포니들의 지휘자이다. 그가 연주하는 교향곡들에는 난각, 자개, 색편으로 구성된 가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있으며,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울림을 만들어낸다. 울림이 커져 음향의 형태가 되고 세부적인 색의 울림이 빛의 교향곡, 시간의 교향곡, 탄생의 교향곡, 천지창조의 교향곡이라는 시각적 이벤트들을 만들어낸다.

 

6월의 전설_옻칠, 색편_1000x803x35mm_2002

 

 

최영근의 족쇄

화면은 공간, 오브제, 그리고 형태를 담으려는 신비로운 욕망을 가지고 있다. 최영근의 족쇄란 우선 공간, 오브제, 그리고 형태를 담을 수 있는 그의 화면이 옻칠로 매끈하게 코팅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다른 화가들의 이차원 화면과는 달리 그의 화면은 삼차원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회화는 이차원의 예술이지만, 화가들은 깊이의 느낌을 창조할 수 있으며 화면을 투명한 스크린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최영근의 화면은 검정유리와 유사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며, 보는 것이란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시각예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공간에 대한 지각이 그의 작품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 화면에서 깊이의 느낌을 찾는 관람자라면 모든 것이 미끄러지고 말기 때문에 그의 화면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칠예 lacquer art가 최영근에게 족쇄를 채운 것이다. 그가 칠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한 그 족쇄는 짊어져야만 할 그의 운명인 것이다.

최영근은 나선과 대각선을 사용하기를 선호하는데, 화면의 공간을 그가 원하는 만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화면에서 나선과 대각선을 들어간 모양과 내민 모양으로 사용할 경우 형태가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며, 화면은 덜 닫힌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극적인 면과 운동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사용한 나선과 대각선을 유의해 볼 때 정적일 수밖에 없는 화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공간이 닫혔더라도 그 공간이 표현적인 요인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조셉 코넬 Joseph Cornell(1903-73)의 작품에서 본다. 삼차원의 작품을 제작한 코넬은 오히려 삼차원을 이차원으로 제한했다. 그가 작은 상자 속에 중요한 것으로 예측되지 않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관람자로서는 그 오브제들의 상호관계를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설치했더라도 상자 속의 닫힌 공간은 가장 거대한 공간으로 보인다. 폐쇄된 공간은 상자 그 이상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사이즈가 작더라도 스케일을 크게 하면 역효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영근의 폐쇄된 공간에서도 가장 거대한 공간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형태들이 발견되는데, 그 형태들은 유혹물들로 그의 작품을 삼차원의 상상력으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런 방법으로 폐쇄된 그의 공간은 조금씩 소통된다.

 

 

대지(大地)의 정(精)_옻칠, 자개_1000x728x35mm_2003

 

 

 

벚꽃이 만발한 토요일 오전, 나는 한남대학으로 가서 그의 작품들을 보았다. 작품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탐색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작가가 확대경을 사용하여 제작했으므로 자연히 보석을 감정하듯 요모조모를 꼼꼼하게 보게 되었다. 동시대 예술가들은 자유로우므로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어떠한 규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그들은 우연의 요소를 포함하여 어떤 것이라도 차용할 수 있으며 작품을 계획하거나 미리 구성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제작한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무책임한 작품들이 양산되었던가! 최영근의 작품에는 우연의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그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긴급하게 표현하는 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데 그의 작품들이 원래 그의 의도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 조건들은 그의 족쇄이다.

자신을 빗대어 한 말은 아니었더라도 그는 “족쇄를 차고 춤을 춘다”는 말을 내게 했다. 재료들의 사용에 제한을 받는 가운데 얼마나 치밀하게 작업하는가 하는 데 대한 대화 도중에 나온 말이라서 그의 말은 적절하게 그 자신을 예증해주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족쇄를 차고 춤추었던 것이다. 그는 족쇄를 차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춤을 자유롭게 출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전을 통해 대중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

닫힌 공간을 한계가 없는 열린 공간으로 만든 작품들이 발견된다. 크기로서의 형태가 아니라 스케일로서의 형태에 따른 공간이 있는 작품이 관람자로 하여금 화면 밖의 공간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일부의 작품은 많은 형태들로 인해 과적한 느낌을 주고, 과적된 형태들이 답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사이즈 size와 스케일 scale은 다르다. 사이즈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오브제에 대한 크기를 말하는 데 반해 정신적인 눈으로 알 수 있는 스케일은 오브제를 구성하는 수준과 수를 말한다. 최영근의 스케일은 우주, 빅뱅, 태초, 빛, 탄생 등과 같은 작품의 제목에서 나타난다. 그는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섬세한 손놀림으로 제작하면서도 우주의 현상을 표현한다. 미세한 재료들을 조립하는 행위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하면서도 그는 신의 존재, 우주의 창조, 생명의 기원, 영혼의 자유 등을 훌륭한 그림으로 그린다. 그에게 칠예는 그의 정신세계의 수준을 고양하는 수행이다.

수학의 일종인 기하는 선, 면, 형상들에 대한 변화를 통해 측량, 거리, 관계를 다룬다. 기하는 물리적 형태에 수를 부여하여 구체화한다. 모든 기하학적 형상들이 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최영근의 작품 다수가 기하학적 형상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기하의 읽기 쉬움 legibility과 명쾌함 clarity으로 인해 기하학적 형상을 선호한다. 직사각형 속의 직사각형, 정사각형 속의 정사각형, 직삼각형 속의 직삼각형, 정삼각형 속의 정삼각형, 직사각형 속의 마름모, 정사각형 속의 마름모, 수많은 현저한 가로선, 수많은 현저한 세로선, 수많은 현저한 사선, 소용돌이 같은 곡선, 직선에 반하는 곡선, 나선의 운동 그리고 맑은 고딕색 위의 배색의 변화 등은 두드러진 효과를 창출한다. 그리고 기하의 매력들 가운데 하나는 그런 형상들로 구성된 작품을 벽에 가로로 거느냐 혹은 세로로 거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완연이 달라지는 것이다. 최영근의 작품 일부는 읽기 쉬움과 명쾌함의 기학적 형상들로 디자인의 측면에서 관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벽에 어떻게 거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완연하게 달라진다.

 

 

창세기(創世記)_옻칠, 자개, 색편_1200x1200x35mm_2000

 

 

최영근의 공예회화

최영근의 작업을 억압하는 족쇄는 재료이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주로 계란껍질, 조개껍질, 그 자신이 색을 필름처럼 만든 후 잘게 부수어 사용하는 색편, 금가루, 은가루 등이며, 더욱 섬세한 표현을 위해 메추리알껍질도 사용한다. 그는 이런 아주 작은 조각들을 세공사가 보석을 다루듯이 다룬다. 재료가 매우 작기 때문에 그는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작품을 칠화 lacquer painting라고 불러야 할지, 공예품 object of craft work으로 불러야 할지를 먼저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칠화라고 하기에는 재료와 기법이 전적으로 공예에 속하고, 공예라고 하기에는 걸어두고 보는 것 외에 공예의 미덕인 실용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예회화 craft painting라고 부르기를 원하는데 그가 자의식을 갖고 회화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공예와 시각예술 두 측면 모두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공예에 대한 그의 기여의 평가는 전통 칠공예가들 lacquer craft artists이 사용한 재료들의 한계를 넘어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법과 기법들에 있어서도 개선을 통해 보완하여 시각적 효과를 증대한 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재료와 기술에 대한 그의 개선은 그가 추구하는 공예회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재료와 기술은 시각적 소통에 대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전반은 추상이고, 기하학적 구성이다. 형태로 말하면 구성주의, 옵아트, 개념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구성주의 혹은 기하학적 추상에 속하는 작품들은 형태의 기능성, 그것의 역학적 표현을 강조한 것들로 여기에 나선형의 구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작가의 개성보다는 기하의 법칙, 색의 법칙을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의 주된 관람은 기하의 아름다움에 대한 즐거움이다. 다양한 구성은 선, 면, 형태의 변화에 의해 가능해진다. 특기할 점은 최영근의 작품들은 그가 사용한 재료들인 칠, 난각, 색편, 자개 등의 특질들로 인해 과거 구성주의 회화가 제공하지 못한 미묘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은 점, 선, 면들의 집합이며, 따라서 점묘법에 의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선과 면은 점들의 집합이다. 난각의 천연 색은 흰색 white도 아니고 고풍 흰색 antique white도 아닌 그것들의 중간색이다. 계란껍질이나 메추리알껍질이 지닌 색은 화학물감이나 그 밖의 천연물감으로는 재현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매우 민감하고 정밀하다. 따라서 그의 구성주의 회화와 추상화들은 우리에게 천연물질의 미세한 색으로 기하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탄생 - 빅뱅_옻칠, 자개_900x900x32mm_2001

 

 

옵아트 혹은 빛의 예술은 기하학적 구성으로 암시하는 요인이나 연상하게 하는 요인 모두를 배제한 가운데 오로지 예술가의 의도적인 착시를 통해 관람자의 심리반응을 촉구한다. 가는 선이나 작은 면들의 반복이 보통이고 반복된 선과 면에서 관람자는 움직임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은 오래 바라볼 경우 관람자는 최면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특기할 점은 칠과 그 밖의 재료들의 특질로 인해 최영근의 화면에서의 광채는 과거 옵아트 작품들의 것과는 다르다. 그가 운동만을 요소로 받아들였더라도 그 효과는 착시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그의 작품은 옵아트에 속한다.

기하에 기반을 둔 개념주의는 구성주의 그리고 옵아트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가 작가의 개성을 배제한다. 더욱이 개념주의자는 작가의 감정조차도 배제한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개념을 존재하는 개체에 앞서 독자적으로 보편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추상적 개념인 아름다움이나 빨강색, 혹은 파란색, 혹은 노란색은 물감으로 귀착되는 현상에 불과하고 진정한 실체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최영근의 많은 작품이 구성주의, 옵아트, 개념주의에 속하므로 그는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화가이다. 왜냐면 구성과 개념이 지성의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에너지 I_옻칠, 난각_1200x1200x35mm_2001

 

 

최영근의 주목할 만한 작품

4월의 빛, 2002

이 작품에서 드물게 최영근의 개성이 강렬하게 표현된다. 그의 개성은 형태와 색이 그리고 제목에서 나타난다. 맑은 고딕이 검은색이므로 붉은 타원형이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그 위의 어렴풋하게 올려놓은 황금색의 직사각형이 전체의 형태를 삼차원으로 만든다. 비대칭의 타원형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존재한다. 이 결과물은 빛에 대한 오랜 시간에 걸친 그의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6월의 전설, 2002

이 작품은 2002년 붉은 T-셔츠를 입은 월드컵 응원 인파가 시청과 광화문을 메운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묘사한 붉은 점들의 군중은 빛의 현상으로 잘 읽혀진다. <4월의 빛>과 더불어 두 점의 <6월의 전설>은 앞서 언급한 구성주의, 옵아트, 개념주의로 분류할 수 없는 그의 고유한 회화이며, 그가 사용한 재료들의 특질들은 다른 어떤 재료들과도 대체될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의 효과를 낸다. 작품 모두 빛의 효과를 재료들의 광택으로 확실하게 나타낸다.

대지의 정(精) / 2003, 별 헤는 밤 / 2002

두 작품 모두 대지와 대한 그의 애정과 하늘에 대한 그의 경외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대지에 대한 사랑을 붉은색으로, 밤하늘의 신비함을 파란색으로, 대지의 심장부를 분출하는 강력한 불로, 무한한 빛으로 채워진 밤하늘을 무한한 공간으로 표현한다. 이런 작품들은 비록 사이즈가 작더라도 우리는 스케일에서 커다란 것들로 간주할 수 있는데, 우리가 수많은 반복된 형태들이 화면 밖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빛 시리즈

그는 이 작품에서 기하의 아름다움과 기하의 법칙을 최대한으로 활용했으며, 동시에 빛을 삼차원으로 표현했다. 빛은 그가 선호하는 주제이면서 특히 그의 재료에 적합하다. 재료들은 빛의 광채를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또한 화면을 채우고 있는 형태들이 커다란 스케일로 나타나며, 그것들은 관람자의 상상 안에서 화면 밖으로 한없이 확장된다. 빛이 질주하는 것이다.

 

 

성가족(聖家族) I_옻칠, 난각, 칠분_453x333x13mm_2005

 

 

신의 지문, 2000

흰색과 검은색이 만들어내는 실타래 같은 형태가 부풀어 올라 구형을 형성한다. 이것은 신의 지문인 동시에 최영근의 지문이다. 그가 수없이 많은 선들을 무작위로 그려 넣은 원형을 화면에 가득 채우자 선들이 뒤엉키면서 새로운 차원을 이른다. 그는 신의 오묘한 섭리를 사람의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진의 형태로 표현한다. 우주가 팽창하는 타원형이지만 우리의 명상 속에서는 이와 같은 원형의 은하계이다. 선에는 난각의 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며, 선의 독자적 운동이 선의 진동을 설명하는 입자들로 구성된 끈 이론 string theory을 상기하게 한다. 끈 이론이 입자의 성질과 자연의 기본적인 힘이 끈 모양과 진동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이 최영근의 선의 모양과 그것의 진동은 점의 성질과 자연의 기본적인 힘을 초래한다. 끈 혹은 선은 끊어지는 데 가 없이 하나의 전체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는 오로지 시작도 끝도 없는 운동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태초의 에너지 I / 2001, 태초의 에너지 II / 2005

인간 활동의 근원인 힘인 에너지를 시각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에너지는 우리의 몸속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에너지는 또한 자연의 현상을 지배하는 힘이다. 이런 힘을 최영근은 검은 원형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형태로 표현한다. 에너지의 신비를 나타내기 위해 그는 검은색 맑은 고딕에 광채를 발하는 무수한 점들을 기다란 물결치는 머리카락 같은 선으로 박아 넣고 외부에 불을 상징하는 힘으로 그것들을 에워쌌다. 검은 색과 검붉은 색의 조화가 이 작품에서 극치를 이룬다.

창세기, 2000

창세기에는 창조주가 우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창세創世란 처음으로 세계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최영근은 빛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짐으로써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이 생성된 것으로 본다. 태초의 빛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가 어두운 창공에 마름모꼴의 조형적인 빛으로 태초의 빛을 표현한 것은 만물이 조형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물리학자들의 설명하는 바와 같이 우주는 매우 조형적인 신의 도시都市이다. 태초의 빛이 마름모꼴인 데 대해서 나는 감동을 받는다. 더욱 나를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창세기의 기록이 작은 정사각형들 속에 빼곡히 박혀 있는 것이다. 그가 자개로 알파벳을 깎아 만들어 창세기의 창조설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며, 걸작이다.

그 밖에도 <태초의 울림, 1997>, <한글문자구성, 2001>, <호반풍정, 1998> 등은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작품들이다. 20년 동안의 그의 노력을 나는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련의 작품에 그의 20년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오늘날 미술가들은 너무 쉽게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거의 습작에 가까운 것들에도 서명을 하고 화랑의 벽에 건다. 이는 미술가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작품을 음식에 비유하면 다수의 미술가들이 패스트푸드를 양산한다. 패스트푸드의 특징은 저렴하고 신속하게 만들어지는 데 있다. 따라서 그것의 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최영근은 슬로우푸드를 만든다. 그는 요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슬로우푸드의 특징은 비싸고 매우 느리게 만들어지는 데 있다. 나는 관람자에게 자신의 눈으로 슬로우푸드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9년 4월

 

 

철로 변(邊) 풍경 옻칠, 난각, 칠분_453x333x13mm_2001

 

YoungKeun Choe’s scale is seen in the titles of the works such as the Beginning, universe, Big-Bang, light, birth etc. He expresses the phenomena of the universe while making the small size of work with delicate hands. He draws a fine picture of the existence of God, creation of the universe, origin of life, freedom of spirit etc. while assembling the delicate materials in the same conduct over again countlessly. For him the lacquer art is the practice of austerities of self-discipline for enhancing the level of his spiritual world...

(Thus) his constructive or geometric abstract paintings give us a pleasure to observe beauty of geometry through the natural materials’ delicate colors...

As many works of YoungKeun Choe’s are belong to constructivism, op art, and conceptualism he is a rational and intellectual painter. Because the composition and conception are the products of intellect... (KwangWoo Kim)

 

I find that he was in commotion of the insatiable creation came from the cogitation in the abstract and realistic representation in the well of deep thought caused by the lacquer art while scrutinizing YoungKeun Choe’s works. It was the vital power of light arises from darkness and the source of the universal order to march from chaos to cosmos...

I would like to call YoungKeun Choe’s lacquer works ‘a sight towards the artistic eternity’ after all as an opportunity to realize one-time and finitude of the world. (DongKwang Chang)

 

For him the profound and exquisite black was space in the universe in where the movement of light has been existed for billions of years. Space gives neither a sound nor a motion though kept all sorts of stories of time and space. It is a living space that harbours a breath. YoungKeun Choe’s formative world is opened up to space in the universe as soon as he seizes a good opportunity to discover the 玄 profound and exquisite black. His interpretation and sensation of the depth in the profound and exquisite black relate to the metaphysical questions about the ultimate being, becoming, origin of life, change etc. in a very natural way. In his conjectured space we find the different representations of the cogitation about the beginning and the end, question about the origin of thought and being, and an emotional metonym for the depth and dimensions. Those appearances in the formative world spurt the vital power. (Hye-Ran Min)

 

 

 

 
 

최영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졸업 (1972)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1981)

수상_충청남도 미술전람회 공예부문 최우수상 (1976) | 충청남도 미술전람회 공예부문 최우수상 (1978) | 충청남도 미술전람회 최고상 (1979) | 충청남도 미술전람회 공예부문 최우수상 (1980) |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1984) | Gold Prize, THE ISIKAWA INTERNATIONAL URUSHI EXHIBITION 2002  | (2002, 日本 石川)

개인전_최영근 작품전 (1990. 신세계미술관, 대전문화원) | 최영근의 칠(漆) 전 (2009. 대전 이안갤러리)

초대전_충청남도 미술전람회 초대작가전 (1982-) | 홍익현대미술초대전 (1984. 홍익대학교 박물관)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85 현대미술 초대전 (1985, 국립현대미술관) |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작가 초대전 (1987, 한국문화예술진흥원)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87 현대미술 초대전 (1987, 국립현대미술관) |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기념 한국현대미술전 (1988, 국립현대미술관) |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전 (1989-)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89 현대미술 초대전 (1989, 국립현대미술관) |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1990, 예술의 전당) | THE JAPAN DESIGN COMPETITION ´91 ISHIKAWA (1991, 日本 石川)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91 현대미술 초대전 (1991, 국립현대미술관) | 예술의 전당 전관 개관기념 초대전 (1992, 예술의 전당) | THE INTERNATIONAL DESIGN FAIR ´93 ISHIKAWA (1993, 日本 石川) |  ´93 대전엑스포 기념 대학미술의 흐름전 (1993, 대전문화원) | 동아일보사 초대 동아공예초대전 (1994, 일민미술관) | 한국현대미술·현재와 미래 전 (1996,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대전시립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1998, 대전시립미술관) | 세계 칠예전 (1998, 臺灣 市立文化中心) | 서울특별시 초대 ´99 서울공예대전 (1999, 서울시립미술관) | THE ISIKAWA INTERNATIONAL URUSHI EXHIBITION·99 (1999, 日本 石川) | The Invitational Exhibition of Ceongju International Biennale 1999  | 「World  Contemporary Craft Now」(1999, Ceongju Art Center) | 대전시립미술관 초대 「현실과 공간의 간극 전」(2000, 대전시립미술관) | The Invitational Exhibition of Ceongju International Biennale 2001 | (2001, Ceongju Art Center) | 한국 현대 칠의 풍요로움 전 (2001, 울산현대미술관) | 대전시립미술관 초대 「생활속의 미술전」(2002, 대전시립미술관) | World Competition of Arts and Crafts, Kanazawa, Special Invitational Exhibition | “Craft Now-21 Artists Each from America, Europe, and Asia” (2003, Kanazawa) | 한밭미술의 여정 전「이동훈과 대전화단」(2003, 대전시립미술관)

단체전_한국미술협회 충남지회전 (1972-1989) | 충남 디자인협회 창립전 (1979-) | 한국공예가 협회전 (1979-1989) | 대전공예가 협회전 (1980-) | 홍림회전 (1984-) | 한국미술협회 대전지회 창립전 (1989-) | 한·중 칠예 서울전 (1994,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 한·일 현대 칠예전 (1996, 부산, 日本 金澤) | 중·한 칠예 북경전 (1996, 中國美術館) | 한·일 현대 칠예전 (1998, 대전, 日本 京都 ) | 한·일 현대 칠예전 (2000, 광주, 日本 東京) | 일·한 미술교류전 (2002, 대전시민회관, 日本 大田市)

 CI디자인_한국표준연구소 심벌 디자인 (1983) | 선양주조주식회사 CI (1991) | 충청은행 CI (1993) | 중부리스주식회사 심벌 디자인 (1993) | 대전광역시 CI (1994) | 한밭개발공사 심벌디자인 (1994) | 한남대학교 CI (1996) | 대덕구청 CI (2000) | 서구청 CI (2002)

환경조형물 제작_대전시민회관 대극장막 디자인 (1982) |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조형물 제작 (1987) | 한국조폐공사 분수대 디자인 (1987) | 한국생산기술연구소 조형물 제작 (1989) | 충청은행 본점 조형물 제작 (1993) | 계룡시 상징조형물 제작 (1993) | 충무체육관 성화대 디자인 (1994) | 유성 스파피아 호텔 조형물 제작 (1997)

학내 업무 경력_디자인학과 교수 (1980-현재) | 문과대학장 역임 | 초대 미술대학장 역임 | 기획처장 역임 | 부총장 역임

현재_한남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과 교수 | 중국 청화대학교 심천대학원 겸직교수

 
 

vol. 20090501-최영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