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규 展

 

여백에 말걸다

 

노르웨이의 숲_610x610cm_캔버스에 석채_2015

 

 

대전 롯데갤러리

 

2015. 5. 21(목) ▶ 2015. 5. 27(수)

Opening 2015. 5/21(목) 6:00

대전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9층 | T.042-601-2828

 

https://blog.naver.com/sonsjsa

 

 

그리움이 무시로1_530x530cm_캔버스에 석채_2015

 

 

비어있음으로 채우다.  

 

한줄기 가는 회오리를 몰고 온 바람은 가랑잎들을 후두둑 떨어뜨리며 잔잔한 연못을 흔들어 놓는다. 색색의 수면 위로 떼를 이룬 물고기들이 유영하듯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이윽고 쉴 자리를 찾아 낸 작은 새들은 흐트러진 잎들 위를 배회하다 삐죽이 고개를 내민 연(蓮) 밥 위로 가만히 몸을 낮춘다. 또 한차례 바람이 지나가고 연못 위로는 고즈넉한 그리움이 쌓여간다.

 

오치규의 작품들은 그간 수 차례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대상들에서 소재를 찾는다. 최근 그의 회화는 단색으로 된 파스텔 톤의 바탕 작업으로 한층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과 삶을 한데 묶어 서정적인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초기부터 제작해 온 이야기적인 요소가 강한 작업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가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는 물고기, 새, 꽃, 의자, 어항, 그릇 등의 이미지는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이끌어 내며 따스함과 정겨움을 자아낸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이겨낸 채 봄의 빛깔을 내뿜고 있는 목련, 작은 바위 위로 위태롭게 올라앉은 새, 어항을 통해 바깥 세상을 엿보고 있는 물고기 들은 작가의 손을 빌어 이야기를 지닌 생명체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운 바다',  '물고기의 꿈',  '꽃 속에 그리움이 피네' 등의 작품 제목이나, 화두이자 텍스트로 활용하고 있는 단편적인 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을 모티브로 하여 일상의 단면들을 담아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담담하고 솔직한 화면이 그의 회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드메 쯤_460x530cm_캔버스에 석채_2015

 

 

그는 캔버스, 한지, 먹과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질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특별히 재료나 일정한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분방한 사고가 자유롭게 화면 위에 표출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바탕 작업을 할 색상을 고르고 그것을 여러 겹으로 공을 들여 칠하고 나면 망설임 없이 생각했던 바를 단숨에 그려 나간다. 감정의 절제를 통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자연과 인간을 한 화면 안에서 조화롭게 풀어 내고자 함이다. 그의 작업은 선과 색과 면이라는 회화의 기본 구성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여백과 어우러져 내러티브하고 서정적인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미지를 묘사하는 유려한 선과 색감의 안정된 화면 구성에서 그의 세련된 디자이너로서의 면모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의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디자이너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그의 회화 작업은 어찌 보면 부수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단순히 회화나 판화, 평면 작업을 넘어 도자기와 조각 등 입체작업에 까지 다방면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예술을 향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에의 열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그의 회화 작업은 사실 일본 유학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붓과 먹으로 종이 위에 그려나간 습작들에서 엿보이는 재기(才氣)와 열의를 당시 지도교수였던 도쿠하시 쇼조우 (高橋昭三)가 알아보았고 자신감을 가지고 회화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었다. 가능성과 희망에만 의지한 채 일본으로 건너갔던 유학시절, 그의 습작들은 처음에는 그저 낯선 이국의 땅에서 무료한 저녁시간을 달래기 위한 소일거리였고 치기 어린 지필묵의 유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차츰 작가로서의 자존감과 창작의 열정을 다잡게 하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이제 노트와 만년필로 바뀌어 버린 먹과 종이는 지금까지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을 통해 자신을 말하고 인생을 말한다.

 

 

나를 향한 그리움들1_530x530cm_캔버스에 먹_2015

 

 

오치규의 화면은 인간과 자연의 대결 구도가 아닌, 모든 자연의 생명체와 우주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동양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선과 여백을 중시했던 동양미술의 전통적인 방식을 수용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코드로 변환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얻어 낸다. 정적이며 소박한 한국의 미와 정서가 스며있는 동시에 색채와 장식적인 측면이 두드러져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사물을 본 순간 자신의 느낌을 극도로 제한하고 선. 색. 면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로만 표현된 화면은 적게 그리고 적게 칠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를 돋보이게 하여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埏植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中略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든다.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릇의 유용성이 있다."   -老子

 

'그릇의 빈 공간이야말로 바로 그 그릇의 쓸모이다' 라고 비어있음의 가치를 말한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보자면 그의 작품 속 여백들은 오히려 비어있음으로 해서 보는 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상상과 상념들로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의 본질을 보아주기를 바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여백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닌 못다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돈이 되는 그릇1_720x720cm_캔버스에 석채_2015

 

 

오늘날의 미술은 끊임없이 색다른 것 획기적인 것들을 지향하고 또한 그러한 것들이 넘쳐나 '이것이 과연 미술일까라는 판단 자체의 모호함까지 감상자들의 몫으로 떠넘기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어버렸다. 각종 영상 매체와 디지털 기술, 미디어의 범람은 새로운 조형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조급한 모색만을 거듭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와 혼돈 속에서 전통미술의 기법을 고수하며 색과 이미지들을 제한하고 단순한 선과 절제된 색면으로 여백의 미를 추구하고자 한 작가의 작업은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작가 오치규의 에너지의 원천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에서 솟아난다. 생과 사, 만남과 헤어짐, 일상의 희비(喜悲),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연들을 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시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 가듯 이러한 모든 것들로부터 소재와 영감을 얻어내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화면을 완성해 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밝고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의 화면이 삶의 온기를 지니고 우리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작가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과 유머, 타고난 긍정적 천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필요로 할까때로는 잠시 동안의 침묵이 더 큰 위로와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을까그의 작품 속 여백은 그런 친근한 이들 사이의 익숙하고 편안한 침묵과 닮아 있다. 그 무언의 침묵에서 우리는 그의 일상 속 편린들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인생과 같이 늘 채워지기를 바라는 미완의 여백으로 남아있다.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손소정

 

 

마음 챙김 나날들_1200x1620cm_스틸_2015

 

 

 
 

오치규

 

일본 니혼대학대학원 예술학 박사 | 충남대학교 교수 | 개인전 15회

 

이메일 | ohchigyu@hanmail.net

 

 
 

Vol.20150521-오치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