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화여성작가회 제17회 정기전

 

臥遊, 일상과 풍경에서 노닐다.

 

강유림 | 강은정 | 고순금 | 고혜림 | 구모경 | 구본아 | 권희연 | 김현 | 김가빈 | 김가을 | 김경원 | 김경이

김귀인 | 김귀주 | 김래형 | 김미정 | 김미희 | 김민정 | 김보영 | 김선정 | 김성희 | 김숙경 | 김승희 | 김예성

김원경 | 김윤순 | 김은미 | 김은진 | 김은하 | 김은희 | 김정란 | 김정수 | 김정숙 | 김지나 | 김지연 | 김진아

김춘옥 | 김현숙 | 김혜진 | 김희진 | 남현주 | 노신경 | 도근미 | 류광일 | 류민자 | 마예진 | 민선식 | 박나연

박명선 | 박미란 | 박민희 | 박선희 | 박소연 | 박소영 | 박소영 | 박소은 | 박소현 | 박소현 | 박순미 | 박순진

박연주 | 박용자 | 박은희 | 박정신 | 박정영 | 박필현 | 박현희 | 배순덕 | 배한나 | 백용정 | 백종숙 | 별할매

서수영 | 서은경 | 서정완 | 소은영 | 손영 | 손지원 | 송근영 | 송수련 | 송윤주 | 송지은 | 송창애 | 송환아

신봉자 | 신지민 | 신지원 | 안영나 | 안예환 | 안재옥 | 안종임 | 안지수 | 안해경 | 양선홍 | 오경미 | 오순이

오영애 | 오일영 | 오정미 | 오정혜 | 우영숙 | 우재연 | 원문자 | 유희승 | 윤미옥 | 윤수희 | 윤형선 | 이명임

이미연 | 이민주 | 이설자 | 이세정 | 이숙진 | 이순애 | 이승숙 | 이신호 | 이애리 | 이영빈 | 이윤선 | 이윤정

이인실 | 이인애 | 이정연 | 이진아 | 이행순 | 이화자 | 이효순 | 이희정 | 임서령 | 장현재 | 전성은 | 전은희

정문경 | 정보연 | 정선진 | 정은하 | 정인수 | 정지혜 | 정현희 | 정효진 | 조명식 | 조은령 | 조희경 | 주민숙

희 | 진현미 | 최명자 | 최명희 | 최소영 | 최지윤 | 탁양지 | 표주영 | 하연수 | 한수민 | 한영옥 | 한현주

허순영 | 허영 | 허은오 | 현재숙 | 홍민정 | 홍순주 | 홍정희 | 황윤경 | 황인혜 | 한수민 | 한영옥 | 한현주

 

총 165명 전시

 

 

 

조선일보미술관

 

2016. 5. 4(수) ▶ 2016. 5. 10(화)

Opening 2016. 5. 4(수) PM 5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61 | T.02-724-6322

 

주최 | 한국화여성작가회

전시기획 | 송희경(문학박사, 이화여대 초빙교수)

 

 

김보영作_달의기억III

 

 

Ⅰ. 여는 글

 

예술은 역사의 산물이다. 시대적 담론과 순간의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삶도 그대로 표현한다. 예술과 역사가 한 몸인 까닭이다. 한국화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화는 격변과 진통의 한국 현대사와 동행하며 진화해왔다. 정권이 몇 차례 교체되고 국내외 정세가 숨 가쁘게 변화했지만 다변하는 미술계의 한 구석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한국화는 일반적으로 종이, 모필, 먹을 기본으로 채색 안료를 더해서 완성한 그림을 일컫는다. 1970년대까지는 이러한 그림을 동양화라고 불렀다. 근대기 서양화가 유입된 이후 이와 구별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고 명명된 회화는 현대 미술의 어느 장르보다도 ‘전통의 계승’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가와 도가에서부터 시작된 유구한 철학적 맥락은 작가들에게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유의 보물 창고였지만, 동시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넘을 수 없는 장막으로도 작용했다. 수천 년 동안 쌓아 온 전통이라는 벽이 너무 두껍고 단단하며 높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화가들은 언제나 작업에 임할 때 과거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전통의 범주에 머물러야 안심이 되었고, 이를 철저히 습득하려고 자신을 무장시켰다. 또한 전통을 토대로 순발력있는 행보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화가들의 치열한 싸움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는 외부의 시선도 적지 않다. 새롭게 형성되는 ‘최첨단’ 창작 담론을 작업에 담아야만 진정한 작가처럼 평가받는 미술계의 분위기도 한국화가들에게는 부담이다. 그러나 전통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와 해석은 헛되고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다. 전통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과 같아서 바닷물 속에 잠긴 암초처럼 무한한 창작의 잠재력을 간직하고 있다. 결국 전통이 가장 훌륭한 창작의 스승인 셈이다.  

한국화여성작가회의 17회 정기전인 <臥遊, 일상과 풍경에서 노닐다>에서 21세기 한국화가 전통을 계승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하고 새로운 방향을 펼쳐나가는 한국화가의 여정을 살펴본다. 특히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생성된 ‘와유(臥遊)’라는 용어를 잣대로 하여 동양의 오랜 예술 철학과 조형언어를 계승, 수용한 방식과 이를 변주하려는 실험을 찾아본다. 이 전시를 통해 와유의 전개와 현대 미술로의 적용 과정이 목격될 것이다. 나아가 남성 작가와 구별되는 여성 작가 고유의 감성과 미의식이 지필묵으로 승화되는 순간이 발견될 것이다.   

 

 

김정란作_서울야경

 

 

Ⅱ. ‘와유(臥遊)’의 탄생과 전개  

 

지필묵을 창작의 주요 재료로 삼아 독특한 조형성을 구현해 온 동양의 전통회화는 동양인의 사유와 인생관이 담겨 있는 소우주나 다름없다. 각 시대의 사회상과 이에 내재된 역사성 및 철학을 독특한 조형언어로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동양의 전통회화에서 주로 다룬 소재는 인간과 자연의 삼라만상이었다. 이미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 토기에 마스크 형상을 한 인물상이 그려졌고, 기원전 3세기의 무덤인 장사의 초묘에서 용과 봉황에 이끌려 하늘로 승천하는 묘주상의 비단 그림이 출토되었다. 제의성과 주술성이 시각물의 목적과 기능이었던 시기를 거쳐 동양의 회화는 점차 감상과 품평의 대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그림을 향유하면서 각각의 사유와 미감을 담은 언어로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상서좌승이라는 벼슬까지 역임한 고개지(顧愷之, 약 345-406)는 논화, 위진승류화찬, 화운대산기등을 저술하면서 “형을 통해 신을 그려낸다.”는 전신(傳神)과, “생각을 옮겨서 오묘함을 얻는다.”는 천상묘득(遷想妙得) 등을 언급했다. 초상화가이면서 고화품록(古畵品錄)의 저자인 사혁(謝赫,  479-502)은 오의 조불흥(曹不興)에서부터 남제 말기까지의 화가 27인을 비평하기 위해 그 유명한 ‘화육법’을 제시했다. 전신, 천상묘득, 화육법 등은 화가이면서 비평가인 사혁과 고개지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체득한 인물화의 비평 용어이다.         

같은 시기에 생성된 동양회화의 유명한 개념이 바로 ‘와유’이다. 와유란 은둔자였던 종병(宗炳, 375-443)이 처음 언급한 말로써, “누워서 노닐다”는 뜻을 지녔다. 널리 알려졌듯이 종병은 송나라 남양(南陽) 열양(涅陽) 사람으로 거문고와 책을 좋아했고, 글과 그림에 뛰어났으며, 산을 무척 좋아한 풍류인이자 은둔 예술가였다. 종병의 재주와 능력을 아까워한 친구들은 그를 여러 차례 조정으로 불러 정치를 권했지만, 종병은 언덕에 살면서 골짜기 물을 마신 지 30여년이나 되었다고 하면서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았다.

 

“산수를 좋아하여 돌아다니기를 즐겨 서쪽으로는 형산(荊山)과 무산(巫山)에 오르고, 남쪽으로는 형산(衡山)에 올랐다. 이 형상에 집을 짓고 상평에 뜻을 간직했다. 병이 들어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탄식하기를 늙음과 질병이 함께 이르니 명산을 두루 보기 어려울까 두렵구나. 오직 마음을 맑게 하여 도를 관조하면서 누운 채로 그곳에서 노닐리라 그리고 그동안 돌아다녔던 곳을 모두 방 안에 그려놓으리라 하였다.”

 

 

박미란作_벗이여, 달 따러가세...

 

 

종병은 나이가 들어 좋아하는 산에 오르지 못하자 이를 한탄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방에 산수 그림을 걸어 “누워서 감상하면서 실재로 산속을 유람(臥以遊之)하는” 기분을 누렸다. 이렇듯 종병이 속세를 떠나 와유를 누리려고 한 까닭에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도 한몫했다. 정권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시기에 혼탁하고 부패한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귀의하여 살고자 하는 결심이 와유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따라서 와유는 세속의 한계를 느끼고 인간 세상을 초월하여 자연으로 회귀하도록 가르치는 장자(莊子)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나와 사물이 혼연일치가 된 상태를 뜻하는 장자의 물화(物化) 정신은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며 산수와 인간의 정서가 서로 소통하도록 이끌었다. 산, 물, 나무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의 삶까지 투영하고자 한 것이다. 자연과 혼연일치가 된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이 길러져서 모든 사물을 넉넉하게 통찰하는 소요유(逍遙遊)를 누리게 되었다. 서복관, 중국예술정신(동문선, 1999), 259쪽

 고개지나 사혁이 그림을 비평하는 도구로 여러 개념을 고안했다면 종병은 어떤 외적인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이것이 체득된 상태에서 와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렇듯 종병은 실재의 산수가 아닌,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가산(假山)을 감상할 때 와유를 언급했다. 그러나 와유의 함의를 곰곰이 살펴보면, “누워서 노닐다”는 단지 편한 자세로 산수화를 본다는 뜻 이외에 상상 속의 자연,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 환상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꿈꾼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이 안견(安堅)의 <몽도원도(夢桃園圖)>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1447년 음력 4월 20일에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성삼문(成三問, 1418-1456) 등과 함께 복숭아밭을 노니는 꿈을 꾼 후 안견에게 그림을 부탁했고, 안견은 3일 만에 <몽도원도>를 완성했다. 최근 이 그림의 두루마리 시작 부분에 적힌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안평대군의 친필이 아니라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안견의 생존당시 이 그림을 보고 감상한 문인들이 한결같이 ‘몽도원도’라 명명했기 때문에, 이 그림을 <몽유도원도>가 아닌 <몽도원도>라 해야 한다.

<몽도원도>의 서사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상기시킨다. <도화원기>에 주인공인 어부는 전쟁 때문에 거칠고 삭막해진 세상에서 삶을 연명하던 중 갑자기 이상한 동굴을 발견하여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환상적인 복숭화 밭과 평화로운 농촌이 펼쳐져 있다. 어부는 복숭아 밭에서 평안과 풍요를 경험하고 현실로 돌아오지만, 두 번 다시 그곳을 찾아가지 못한다. 따뜻하고 화사한 복숭아밭이라는 신천지는 어쩌면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제3의 공간일 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지럽고 삶이 궁핍할 때, 유토피아를 그리고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 감행한 환상적인 여행은 방 안에 산수화를 걸어둔 채 심산유곡을 상상하며 즐기는 와유와 다를 바가 없다. 와유가 ‘dream journey’라고 영역되는 까닭이다.

 

 

송윤주作_산책-대숲

 

 

Ⅲ. 와유(臥遊)의 ‘창조적’ 해석

 

와유는 평생 벼슬길을 거부한 종병의 인생관이 반영되면서 세속을 떠난 은일처사의 무위자연 적 철학 개념이 되었고,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산수화를 비평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감상 코드로 자리잡았다. 자연 경관을 그린 산수화의 감상 코드로 정착된 와유를 다른 장르에도 적용하여 그 의미를 확장해본다. 옛 선비들은 산수화가 아닌 그림을 보면서 그들만의 와유를 만끽하지 않았을까. 스승과 성현의 일상을 재현한 고사인물화를 통해 과거의 인물을 기억하며 따르고자 하는 존경심을 길렀고, 당시의 풍정을 관찰하며 동시대의 생활상을 해학적인 풍속화로 기록했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꽃과 새의 화조화를 진열하면서 나만의 공간에 복이 깃들기를 간절히 원했고, 진귀하고 값진 물건을 기록한 기명절지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부와 높은 감식안을 자랑했다.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다층적으로 담아 낸 각 장르의 그림이야 말로 말 그대로 누워서 노닐며 감상할 수 있는 와유의 대상이다.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리를 스치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삼라만상이 화폭에 담기면, 또 다른 와유물로 재탄생되는 셈이다.

21세기와 와유를 통섭하기 위해 ‘일상’과 ‘풍경’이라는 개념을 정리해 본다. 우선 일상이다. 일상은 199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에서 부각된 용어이다. 이 시기의 일상성은 “맥락화된 의미의 체험”이라고 정리된다. 맥락이란 체험되는 시간과 공간이다. 맥락에 놓인 주체들은 각각의 다른 실천을 행하게 된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행위자가 실현하는 서로 다른 행위는 서로 다른 의미를 낳는 것이다. 결국 너와 내가 다르고 나의 어제와 오늘도 같을 수 없다. 박수진,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대중문화적 요소와 일상성」, 미술사문화비평4(미술사문화비평학회, 2013), 70쪽.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다름을 경험하는 과정, 그리고 이것이 켜켜이 축적된 상태. 일상이 간직한 보이지 않은 힘이다. 다음은 풍경이다. 풍경이란 용어는 17세기 유럽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옮길 때 사용된 용어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논의하는 풍경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니다. 예술가가 주체적으로 선별하고 편집해 낸 재현의 구성물이자 인식의 투사물인 셈이다. 따라서 풍경은 인간의 외부 세계를 행하고 있지만, 예술가의 내면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안소연, 「(불)가능한 풍경」. (불)가능한 풍경(Plaoto, 2012), 9쪽

 

일상과 풍경을 생각하며 21세기 한국화에 와유를 대입해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펼쳐지는 광경,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농촌과 도시라는 다소 상반된 공간과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자아낸 사물의 다양한 색상, 자연의 구성물이라 일컬어진 산, 나무, 물, 꽃, 그리고 이것들의 감지와 관찰 과정에서 생성된 다양한 감정과 차별화된 사유들. 같은 사건과 사물을 접해도 동일하지 않은 느낌은 작가의 지필묵을 통해 서서히 가시화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작가 자신의 와유물이다. 그리고 이를 목도하는 관람객도  각자 만의 와유를 누린다. 4세기 종병이 은둔의 방편으로 언급한 와유가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친 후 이 시대에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윤선作_自己 (꿈)

 

 

Ⅳ. 닫는 글

 

한국화가들은 묵의 운용과 전통적 채색 방법을 습득하고 ‘한국적’ 소재와 표현법을 탐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과거를 소중히 하되 현재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동양의 정신성을 간직한 채 각자의 심성을 묵묵히 화면에 담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결실을 위해 작가들은 동양 회화의 미학적 개념을 여전히 탐구하고 있다.

전통 재료인 지필묵을 소중히 다루며 이를 지켜온 한국화여성작가회의 회원들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17회 정기전인 <臥遊, 일상과 풍경에서 노닐다>이다. 이 전시에서는 각양각색의 와유 코드를 읽을 수 있다. 작가들이 평소에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과 주변에서 항상 목도하는 풍경은 와유의 대상이며, 이를 자신만의 색과 형으로 승화하여 화폭에 오롯이 담아내는 작업은 와유의 산물이다. 와유의 실행 과정에서는 이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상이나, 가독성이 희미한 비구상이 모두 포괄되며, 지필묵 이외의 다양한 물성과 질료의 활용도 가능하다. 오로지 여성만이 간직할 수 있는 섬세한 감성과 솔직한 감정이 독창적인 손길을 거쳐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와유물로 탄생될 뿐이다. 이렇듯 한국화여성작가회의 17회 정기전은 작가 개인이 발현한 각양각색의 와유를 체험하고 향유하는 공감의 마당이다. 그리고 한국화의 질긴 생명력과 무한한 창작 가능성이 제시되는 문화의 장이다. 이 전시를 통해 전통이 부여하는 창작의 힘이 확인되기를 기대한다.      

 

송 희 경(문학박사, 이화여대 초빙교수)

 

 

이진아作_퍼즐

 

 

허순영作_봄빛

 

 

허은오作_Capturing the Moment of Fantasyland

 

 
 

 

 
 

vol.20160504-臥遊, 일상과 풍경에서 노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