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展

 

" 뿌리根本 , 청춘靑春 "

 

회가_130×250cm_한지에 채색_2012

 

 

갤러리 M

 

2016. 10. 5(수) ▶ 2016. 10. 11(화)

Opening 2016. 10. 5(수) PM 6

서울시 종로구 인사4길 12 | T.02-737-0073

 

https://gallerym.kr

 

 

조선의 봄-부분_160×95cm_한지에 채색_2012

 

 

작가노트

[뿌리根本] : 유학시절 작가로서 나의 정체성 확립의 근간을 고민하였고 내가 가지는 뿌리에 대한 고찰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통적 소재를 통하여 풀어내려 한다.

[청춘靑春] : 비극에 노출되어 자존감을 잃고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 그 속에서 희망을 품다.

 

 

산수연 행렬도 12폭 부분_120×660cm(각 120×55cm)_한지에 채색_2016

 

 

오늘의 청춘이 담은 전통

   이재선의 그림들은 정교하고 맑다. 세밀한 필선들이 이루고 있는 정갈한 형상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완성도 높은 장인의 숨결이 녹아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작가는 중국을 유학했다. 중국에 가기 전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유학하고 돌아온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중국 맛이 난다는 말이었다. 결국 그는 그림을 배워오되 흔히 말하는 중국 맛을 빼고 와야 한다는 걱정과 부담을 안은 채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 부담은 점차 자신감과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중국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갖는 자국전통에 대한 자부심과는 다르게 ‘나’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우리 입장에서 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 본연의 향기가 묻어나올 작품에 대한 확신은 중국에서 오히려 더욱 굳어졌다. 그는 정체성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뿌리를 고민하고 연구하기 위해 한국의 전통을 그리고자 했다.

 

수묵화 일방성 극복의 과제

   한국화에서 수묵화는 절대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곱고 말끔한 채색화는 한 때 왜색으로 비난받으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김은호, 김기창, 이영일로 대표되는 일제말기의 채색화들은 이제 거의 취급되고 있지 않다. 해외에서 빌려와야만 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위작논란의 피해자인 천경자의 화려한 현대채색화 역시 그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자랑스러운 전통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자리는 수묵화가 전통으로써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먹 필치가 물씬 풍기는 수묵화만이 한국화의 전통인 듯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줄기가 왜곡되어 있는 탓에 수묵과 채색은 원래의 구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되기도 한다. 당대(唐代)의 수묵을 중심으로 한 남종화와 채색을 중심으로 한 북종화 구분이 여전히 지금을 지배하는 구도다. 지체 높은 지식인들의 그림인 남종화 수묵과 화공들이 그린 세밀한 북종화 채색으로 이해되는 구분법이다. 그래서일까, 이재선의 그림들은 이제 중국인들이 만든 용어인 공필화(工筆畵)로 불리고 있다. 채색을 기초로 한 신분의 잔재가 남아있는 용어인 북종화 대신 부를 수 있게 현대 중국이 만든 말이다.

   이재선은 중국에서 공필화를 배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중국의 그림을 그린다고 해야 할까. 그가 지금 이곳에서 그리는 그림에는 우리 전통과 뿌리 찾기라는 노력이 작품마다 빠짐없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중국의 공필화가 아니라 우리의 채색화이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수묵화만이 아닌 새로운 한국화를 위한 방법 찾기이기도 하다.  

 

 

청춘-심연 深淵 부분_137×278cm_한지에 채색_2016

 

 

사생의 현장성

   작가가 유학 시절 학교를 떠나 운남성으로 간 40일 간의 사생수업은 중국 소수 민족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학교로 돌아와 사생을 통하여 얻은 수백 장의 크로키를 토대로 <회가(回家)>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소재의 현장성이 선명해야 하는 것은 어디에서도 재론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을 그리면서 우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중국에서 필법을 공부하기로 한 작가가 우리의 화법만을 거기서 수련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장의 채취를 가장 잘 담는 사생을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 누구나 수행해야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소수민족을 볼 때는 그 현장의 생생함을 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면 우리의 전통 고택이나 복식, 그리고 우리 풍경이 가득한 전통 사찰에서는 가장 우리다운 생생함을 담아야 한다. 즉 중국풍이나 한국 고유의 필법 고집이 아니라 어디서든 사생의 생생한 현장성이 정작 문제인 것이다. 작가는 그 현장에서 바라본 어떤 시선과 감성도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길 원했고 그 작품을 관객과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원했다.

 

전통과 청춘

   전통이라는 논제와 함께 이재선이 다루고 있는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청춘’이다. 작가는 말한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관념의 모험』이란 저서에서 청춘이란 아직 비극이 노출되지 않은 생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은 충분히 비극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계층 간의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 속에서 흙수저․금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청년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해나가고 있다. 자존감을 상실한 청년들과,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고 있다.

   이 주제와 함께 작가의 방법을 다시 보면, 더 깊고 유려한 표현을 위한 중국 유학과 수련은 전에 여기서 우리를 고민하고 배웠던 자신의 자질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들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제 채색의 여러 필법을 구사하려는 숱한 노력들과 그에 따른 성과들로 나타나고 있다. 먹 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정교한 여러 인물들을 담아내는 구성으로 가득한 그림들이 이번 전시회 작품들로 그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세월은 여지없이 가을을 불러낸다.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무더위를 선선한 바람이 대신하고 있다. 새 계절은 늘 그렇듯 감성을 자아낸다. 아프기만 한 청춘일 수는 없다. 예술을 배우는 것과 그 향유에 청춘만이 예외가 될 수도 없다. 도심 가로등에 방해받지 않는, 교교한 달빛 아래 차 한 잔이 어찌 사치가 되겠는가. 전통과 청춘의 행복한 선물, 이재선 그림은 그런 감성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글쓴이 : 최형순( 미술평론가)

 

 

청춘-남_60×65cm_한지에 채색_ 2016

 

 

청춘-여_60×65cm_한지에 채색_2016

 

 
 

 

 
 

vol.20161005-이재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