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agazine vol.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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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라 | 선전공화국

글 | 조현정

김기라 개인전_선전공화국_Loop | 2008.7.25~8.20

 

도입과 전시제목 광고라는 단어도 있을 텐데, 하필 선전이라는 정치적인 단어를 택했다. 애초에 광고를 사용한 목적이 정부의 정책 따위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작가 자신 지나치게 범람하는 광고물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글로벌 기업들의 횡포와 전횡, 그들이 생산해내는 것들의 유독성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감정들을 응축해낸 것.  

1층 전시장에 있는 작품. 가까이서 보면 화면 가득한 정크 푸드를 극사실화에 가깝게 묘사했다. 일반적으로 만찬이나 식사라고 하면, 가족이나 다정함, 정겨움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정크 푸드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혹은 자극적인 맛을 위해 존재하는 영양이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여기에 묘사된 작품들에는 하나 같이 담배 연기와 파리 등이 덧붙여져 있어 불길함과 불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렇지만, 액자 등은 마치 바로크 시기의 정물화 부럽지 않은 고풍스러움을 지녀 또 한 번의 부조화를 낳는다. 먹음직스러운 색상과 향과 달리 그 이면에는 한없는 독소를 품고 있는 정크 푸드처럼, 이 작품이 문제 제기하고 싶은 바는 광고, 즉 선전이 갖고 있는 해로움이 아닐까.  

지하 1층 전시장은 보다 더 적극적이 된다. 영화, 텔레비전 뉴스, 익숙한 브랜드의 변형 등.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선포와 선동. 김기라는 내심 두려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브랜드의 압도적인 장악, 한 가지 패턴으로 고정된 방송과 뉴스, 세계를 지배하는 영화의 로고.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한 채로 광고에 물들고 광고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고 있다. 코카인이 든 음료는 우리는 죽일 것이고, 시보와 함께 시작하는 뉴스는 앵커들의 옷과 머리 스타일의 변화만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죄악과 전쟁에 대해 책임질 사람 역시 없다. 단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그러한 문장들은 곧바로 우리 머리속으로 들어와 새겨진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 비판할 필요도 없다. 편하게 주어진 것을 '소비'하면 된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아니,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데.  

설치 작업은 난 데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김기라가 아닌가. 내게 익숙한 김기라는 지하에 있는 미디어 작품이다. 그런데 1층의 평면과 2층의 설치라니.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설치 작업 속에도 미디어가 있다. 물론 비중은 적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찾기도 어렵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민예품 사이에 공들여 키운 듯한 화분들 사이에 뜬금 없이 매달려 있는 스피커와 전구 사이에, 어릴 때 흔히 보던 장식 접시 사이에 몰래 숨어 있는 모니터에는 쇼프그램의 한 장면이 흘러 나온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일반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자극적인 영상이 시대에 걸맞지 않은 흑백 작은 모니터에 소리도 없이 비친다. 불경 같은 사운드는 비치된 어떤 물품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공간을 맴돌기만 한다. 그런데 이런 부조화는 친숙한 풍경이다. 20여년 전 여느 집의 거실은 꼭 이런 풍경이었다. 남들 다하는 분재와 수목을 하고, 큰 관심도 없는 도자기를 사고, 부지런한 손을 놀려 화분을 가꾸고, 그 모든 것들을 큰 맥락 없이 앵글 맞춰 줄 세우는 풍경. 지금처럼 선전이나 광고가 판을 치기 전, 우리 집 거실도 바로 이랬다. 엄마가 좋아하는 화분, 아버지가 여행서 주워 오신 돌덩이, 누군가 해외 여행 기념으로 사다준 민예품 등등. 덜 예쁘고, 정돈된 느낌도 없지만, 누군가의 정서와 누군가의 기호와 누군가의 마음이 모두 모여 있었다. 딱히 보여줄 어떤 것도 아니고, 유세를 부리기 위한 장치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온 내력이 살아 숨쉬는 공간. 그 공간에는 가족이 있고, 이야기도 있고, 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매끈하지 않고, 반짝이지 않더라도 마음은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촌스러운 꽃 무늬 벽지를 바라보며 잠드는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김기라의 의도가 떠올랐다. 영상 작업의 한계, 영상 작업이 구현하는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치 작업을 선택한 그는 사진이나 활동 사진이 보편화 되기 직적의 파노라마와 같았다. 관객은 김기라가 구현한 말끔한 영상을 보는 대신에 오래오래 그의 작업 속에 머물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짐짓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의외의 발견에 감탄하기도 한다. 멀리 가지 말고, 내 마음 속 과거를 들여다 보면 이렇듯 참혹한 <선전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김기라의 산뜻한 제안이 미소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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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 제거된 시선의 텍스트

글 | 김용민

 

읽는 시선을 익명화하며 텍스트를 제거해 갈 때 여기에 남는 것은 텍스트의 틀이요, '무-의미'한  간극뿐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그누도 묻지 않던 사선의 경계를 넘어 시선의 능력이 이렇게나 조약한지 바라보게 된다.  비어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쉬었다 가는 쉼표도 아닌 언제나 읽는 자의 바깥에 머물러 있는 쇠외된 이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주관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며 관계하는 나의 모습을 밝힐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유연한지 않은가. 비로소 알게된 사실이라면, 정확하게 나의 독서가 언어를 도난당함으로 깊은 실음에 빠진 주체의 위치를 비추며 그렇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내용의 전달이 이루어지는 곳은 얼핏 보기에 읽고 쓰는 데 있어 보이지만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다. 분명 언어는 비어 있는 곳에 있었고 그 곳을  보지 않으면 안되는 강요의 힘에 의해 작용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떤 빈 장소에 언어가  놓였다. 이 언어의 두께는 지극히 섬세하여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주 얇은 층이다. 그러나 언어는 어떤 빈 장소에 놓여 종이를 태우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것에 정신없어 하는 우리의 시선은 논리라는  틀에 갖혀 그 틀에 매몰되어 버렸다. 시선의 해방은 여기서 부터 출발한다. 그 시선은 원래의 의미를 쫓아 무게를 갖는 시선으로 스스로의 공간과 장소를 획득하게 되며 가시화 된다. 또한 그 시선은 색의 소멸을 초래하여 모든 것이 할 말을 잃은 말 이전의 상태를 재현한다. 주먹을 꼭 쥐고 힘차게 젓을 빠는 갖난 아이의 웅쿠린 몸에 겹처진 주름처럼. 얼핏 보기에 모두들 갖아 보이지만  그 주름은 제 각기여서 같지 않은 분명한 인식표를 갖고 있다. - 배아 혹은 증식, 언어의 다양함은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 그 인식표가 명확해 질 때, 시선의 빛 줄기가 드리워지는 때 종이를 태우지 않고 급박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 그림자의 출현이 언어의 비어 있음을 반증한다. 결국에 그것은 긴장감으로 작용한다.  미세하게 떨리는 주름과 주름 사이로 연약한 공기가 흘러가며 장소를 간지럽힌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사물화 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거꾸로 말하면, 관심을 받아 수줍어 하는 사물의 간드러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예민한 심성을 갖고 있으니 단지 자신의 구역에서 높게 쌓여 있을 뿐이다. 시선은 하늘로 향하며 언어는 그 사이를 활공한다. 그 뒤를 따라 바람이 이니 간극의 틈이 만들어 낸 시선의 기압의 차이라. 압력의 높고 낮은 대기의 변화가 읽기의 환경을 조정하였고 사유의 내려 앉음을 이해도록하게 하였다. 여기서 읽어내고 머리를 움직여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로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도되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말린 종이가 말리지 않은 종이에 서서 일종의 태도를 갖추고 있으니, 이는 언어 밖의 틀이었다. 이와 같이 시선의 주체는 거기에 있지 못하고 언어 밖의 틀에 서서 그 자체를 보고 있다. 즉, 시선은 '시선의 것'에 있다. 그리고 텍스트의 빈 지역을 보도록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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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형민 | 미지의 경계

글 | 나형민

 

본인 작업에 있어서 표현되고 있는 외양적인 모습은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과정을 통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도시라는 존재가 수많은 사회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고 또한 점점 확장되고 있는데, 현대인에게 도시라는 존재, 공간은 무언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적인 도시의 모습이 선호한다기 보다는 매스미디어, 언론과 광고에 의해 포장된 도시의 이미지, 세련된 기호로서의 도시를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전통 회화 속에 산수화가 단순히 산수자연을 재현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향으로서의 도원경을 제시하고자 했듯이, 현대인에게 있어서 도시공간의 이미지는 실제적인 도시의 모습과는 유리된 하나의 이상향으로서의 유토피아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산수화가 보여 왔던 도원경의 역할을 현대에 와서는 고급화되고 명품화된 도시의 이미지가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   

하지만 이런 도시이미지는 분명히 현실 속의 실제적인 도시와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도시란 마치 하늘에 부양하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현대인의 도시인식를 반영한 것이 2006년부터 표현해 온 부양도시라는 시리즈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현실인식을 반영한 정도에서 머문 측면이 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서 기획한 바는 도시를 둘러싼 이미지가 하나의 환타지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여기에는 여러 상상의 여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비록 현실적인 도시 공간에서 실현 불가능하고 도시공학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하더라고 화판이라는 창작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미처 체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에 대한 어떤 경계를 넘나드는 회화적, 또한 입체적 실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우리가 처해있는 공간에 대한 물리적, 시각적 경계를 넘어선 미지에 세계에 대한 예술적 체험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 공간의 정체성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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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연마산 자연미술공원 | 갤러러KO

2008. 8. 19(화) ▶ 2008. 11. 11(화)

충남 공주시 반죽동 218 | 041-853-8828

www.natureartbienna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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