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agazine vol.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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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사 | 도공의 심정
글 | 김용민

 

할 수 있는 만큼, 손이 닿을 수 있는 만큼 빚고 구워낸 사기그릇은 도공의 마음을 움직여 풍경을 담았다. 서투른 듯하게 그은 선(線)과 모양이 다시 어린아이의 시선에 머무르게 한다. 언뜻 어림잡는 수순에 그치기 십상인 표현이 ‘준법’으로 자리 잡아 유쾌하고 멋스러운 쾌(快)를 끌어 일으킨다. 사기(沙器)에 눈을 맞출 때, 우리는 긴장되고 불편했던 일상의 발걸음을 풀고 그릇 속에 흐르는 냇물에 발을 씻는다. 딱 그만큼만 만들면 되지. 이게 참으로 어렵다.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중국의 도자기를 보면 숨이 꽉 막힐 정도니 짚신을 신고 언덕을 넘어온 사내가 여기서 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에 불편하고 마음이 어려워 땅바닥에 등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 손이 뻗을 수 있는 만큼. 이것이 인간답고 자연스럽지 않은지, 한 발 앞으로 가고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추임새가 아닌지 말이다. ‘그만큼’에 관하여 한 가지를 더 숙고해 본다면 거북하지도 두렵지도 않은 진실이라 하겠다. 자신을 속이고 바람직한 그릇을 내보인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진실을 비법에 감추고 ‘깊은 그늘’이 진 도자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바르지 않다. ‘피로써 피를 씻는 악전고투를 거쳐 전해져 가는 체험’처럼 진실은 체득되어 베어 나오는 것이다. 소리가 울리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듯, 몸을 울리고 손끝으로 빚어 나온 곳이 진정하다. 그런데 그 스스로도 공간을 갖고 있으니 도자기는 풍경의 몸이다. 땅을 파고 더 깊게 팔수록 지구 중심의 냄새에 더 가까워진다. 과거의 채취가 다시 빛을 보는 때에 그 냄새는 잠시 본향(本鄕)을 향수하게 하고 사라진다. 흙은 그런 것이다. 이는 자연이란 본양(本樣)의 기억을 갖고서 여러 가지로 그릇이 되니 풍경은 몸통이 되었다. 몸통에서 익숙해진 울림이 나오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 불 땐 가마에 넣고 그게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불의 춤이 흘리고 울리는 대로 도자기를 맡길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 만큼’은 그 만큼으로 족하여 그 다음은 ‘내 맡김’뿐이다. 더 이상 도자기는 도공의 손에서 완성될 수 없다. 그 빈 공간을 채우고 넋을 일깨우는 일은 불쏘시개로 불을 피우고 이리저리 참나무를 돌리며 온도를 조절하는 데 있다. 그가 불꽃을 본다. 하루를 보고 이틀을 본다. 불이 다 꺼질 때까지 고온의 가마를 본다. 거기서 도공은 겸손해진다.

 

이와 같이 ‘그만큼’은 서구와는 다른 동양의 미적 범주의 한 갈래로 동일성과 차이성에 대한 방향성을 의미한다. 의상(625~702)의 화엄일승법계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만큼만 재현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보여주는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은 사물을 연기(緣起)의 산물로 파악한다. 그 손으로 하나의 그릇을 빚지만 그 단단하기나 표면의 광택과 표현들은 불꽃이 만들어 낸다. 작가도 그릇이 될 사물도 어찌할 수 없는 무자성(無自性)의 존재가 있으니 곧, 공(空)이다. 표면적으로 봐도 도자기는 사(事)와 공(空)을 동시에 갖고 있다. 도공 또한 빚는 손과 마음을 갖고 있다. 여기서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리(理)다. 비어있지 않은 그릇은 없다. 비어있지 않다면 이미 그것은 그릇이 아니다. 더불어 도공에게 그만큼의 마음이 없다면 그 빚는 손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거나 그 손에서 나오는 것은 온전한 도자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이치가 리(理)다. 그 리(理)는 그릇 속에 있기도 하며 도공의 마음속에 있기도 하다. 즉, 하나는 일체를 포함하고 일체는 다시 하나를 포함하는데, 몸 바깥의 마음은 몸 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에서 ‘그만큼’이 해석된다. 특히, 한국의 미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마음으로 일치하고자 하는 특성으로 다른 나라의 아름다움과 구별된다. 정확하게 수치로 정할 수 없는 위치와 분량을 이미 한국인들은 알고 ‘적당하게’, ‘그만큼’으로 통각(統覺)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업이 분청사기가 아닌가.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처럼 귀족의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허락되어 표현할 수 있는 도자기였다. 분청은 분장(粉粧)기법과 무늬의 자유분방한 멋을 풍기게 한다. 이는 단순한 표현방식으로 머물지 않고 그 시대(고려 말 조선 초)의 역사 ? 문화적 배경과 제작방식에서 한국의 고유한 미적 의식인 ‘그늘’을 포함하고 있다. 14세기 고려의 멸망과 더불어 상감청자의 퇴락을 떠안고, 14세기 중엽 지방향리와 평민층으로부터 성장한 신진사대부들 계층의 출현과 문화적 향유가 민본을 중시하여 민예적인 형태로 나타나 한국 역사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융성하였다. 작업의 시점에서 살펴본다면, 모든 도자기가 그렇겠지만 분청사기는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감할 수 없다는 데서 수련이라는 ‘그늘’을 갖는다. 도공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 유약을 바르고 말려 가마에 넣고 초벌과 재벌을 하며 하나의 그릇을 기다린다. 말은 사라지고 보고 기다리고 조절하며 그릇을 마음에 넣어 둔다. 일을 하는 가운데 삼매(三昧)에 빠져들며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가 형성된다. 도자기가 되기까지 도공에게 있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그 시간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도공의 마음이요, 그릇의 공(空)이요, 가마 속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그릇을 만드는 일과 가마 속 공간을 데우는 일이 자신의 마음을 길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분청사기의 분장과 무늬는 그릇에 단순한 장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마의 불길에 맡겨 도자기의 얼굴과 피부색을 놓이게 하니, 어떠한 변모에도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분청사기가 상감청자와 백자의 중간 시기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도 하얀 도화지를 연상하게 하는 백자의 백토나 상하 반전된 기법이 시도된 고려 상감청자의 특성이 고루 섞여 있다는 데서 분청의 독특하고 새로운 측면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도공이 작가가 되는 지점을 생각해본다. 긁고 찍고 만들고 붓질하고 하는 행위는 회화작업의 기본활동이며 미적활동으로 쾌(快)다. 그 쾌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도 않다. 이처럼 분청작업은 자연스럽고 작가의 여유와 즐거움을 재현한다.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단지 인간이나 사물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밖과 안에서 공 되는 빈 공간을 말한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심상에서 오는 쾌며, 작업에서는 ‘미의 이념’의 자리다. 서양미술은 전위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매체이건, 기법이건, 이데올로기건 간에 미술의 역사는 이동하였다. 반면, 동양의 미술은 그 작용원리가 서구의 것과 전혀 다르다. 동양에 있어서 미의 이념은 ‘비어 있음’을 강조한다. ‘비어 있음’은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없고 사물과 이념(정신)의 차이가 없는 진여(眞如)의 세계다. 원효(617-686)는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에서 진여를 우리의 마음과 연결 짓고 있다. 그것을 ‘일심(一心)’이라 하는데 이는 공의 자각인 성자신해(性自神解), 즉 본각(本覺)으로 부처(깨달은 자)와 일반인(번뇌에 있는 자)의 차이는 깨달음의 차이가 아니라 본각의 유무에 있다는 사실이다. 적용해 보면, 작가와 단순한 옹기장이와의 공통점이자 차이점은 미적 깨달음에 있다. 구체적으로, 도자기에서 미적 깨달음은 비기능성이다. 그릇이라는 말자체가 안고 있는 용기(用器)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 도구적 존재성을 갖는데 그것을 알고 있으나 이것으로부터 떠날 때 미적가치가 발현된다. 그렇다고 관상‘용’(觀象用)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기’(器)의 공에 있다. 분청작업에서 봤을 때, 그것은 분장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렇듯, 분장은 그릇에 얹혀 그 자체로 신비롭게 즉, 미적이게 되는 것이다. 도자기를 도자기로 보는 것 더 나아가 도자기를 작품으로 보는 것은 그릇의 무명(無明)이다. 곧 ‘비어 있음’인데 이 비어 있음은 분청에서 분장이며 서양의 기법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작가가 표현한다고 해서 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작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다 개입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으며 그 마음은 ‘일 한 만큼’ 족한 것이다. 작가는 장식을 통하여 도공에서 작가의 위치를 획득한다. 도공은 당초무늬나 국화무늬를 숙련된 솜씨로 계속해서 그려내지만 작가는 한 작품에 멈추며 다른 장식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김지하는 안성유기막의 그릇을 다루는 공정을 예로 들며 작업에 대하여 생명성을 거론하고 있다. 그의 말을 적용해보면 이렇다. 흙이라는 재료 내부의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시며 불에 의하여 변성해가는 자연적 차원의 변화 과정에 자각의 노동이 개입함으로 그릇은 생명을 갖게 된다. 특히, 분장은 작가의 미적 시각과 미적 기술에 관여하는 주요한 과정으로 작가로 가늠하게 하며 도자기의 얼굴을 구별 짓는 창조적 작업으로 이행하게 한다. 작업 속에서 생명성을 인식하는 것이 작가의 쾌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작업의 분량으로서 기준이 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분청작업을 해온 김한사는 “나는 작업을 할 때마다 먼저 나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욕심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이다. 걸작을 만들겠다는 집념이나 애착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일인가를 생각한다. 나의 삶 뿐 만아니라 인간 전체의 삶 속의 고통과 슬픔을 사랑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내고 싶다.”(작업노트) 라고 말했다. 작업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비어 있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릇은 손이 닿을 수 있는 만큼만 하다. 그 모양도 쨍하게 좌우대칭이 된다거나 말끔하게 유약이 입혀지지 않았다. 어딘가는 주둥이나 몸통 한 부분이 눌려 있고 또 어딘가는 덧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이 있다. 표현을 하되 인위적이지 않고 소담스럽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제작이 그의 손에서 비롯되지만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는 미련 없이 제작을 멈춰버린다. 그는 유약의 농도를 알면서 그릇표면에 선을 긋고 불의 새기를 알면서 장작 가마에 불을 지핀다. 이는 많은 세월과 시간의 경과에서 온 ‘그늘’됨이다. 그럼에도 그의 그릇에는 시적 여유와 여백이 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뤄진 일이 아니라 ‘삭힘’의 과정으로 진행된 결과다. 끊임없이 비우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도자기와 자기 자신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그곳은 ‘비어있음’이 아닌가. 그릇의 공(空)과 작가의 마음이다. 인간 전체의 삶에 고통과 슬픔을 사랑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그 비어있음에 사랑을 채우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김한사의 다른 작업노트에는 “예술가는 창작하는 사람이며,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창조주라고 할 때,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제2의 창조 행위를 수행해 나가는 피조물입니다. 그러기에 창작하는 과정에서 예술가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룩함으로서 그 자신밖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창작하는 과정에서 예술가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언급하는 부분은 신성한 존재를 모시기 위한 자기 비움이다. 김지하의 글을 빌어 설명하면, 이것은 “‘아파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전지공심(天地公心)이며 율려로서 세계와 중생을 치료하고자 하는 참된 예술가와 신인간의 조건이다.” 즉, 김한사의 작업은 미적이면서 윤리적이다. 이것이 분열되면 그의 ‘비움’과 ‘모심’은 그의 그릇에서 떠나고 만다. 이점이 김한사의 작업을 한국적이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그의 예술성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이 된다. 최근 그는 그릇의 형태를 벗어나 유리를 사용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꽃의 모양에 유리가 무지개처럼 마블링 돼 있거나 캔버스처럼 평평한 면에 색유리가 녹아 있는 작품을 보게 된다. 그의 나이 오십 새에 마음이 동하여 나타난 새로운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각별한 점이라면 그의 그릇은 새로운 재료를 받기 위하여 더 이상 정형적인 그릇의 모양 취하기를 그쳤다는 것이다. 거기서 순수회화의 세계로 접어든다. 순수회화의 세계는 물질이면서도 정신적인 것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도’다. 시도는 시련을 수반하며 끊임없는 노력을 요청하고 새롭게 끌리는 것에 대하여 솔직해지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진실은 이런 것이 아닌가. 동시대미술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블루칩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비움과 담아냄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또한 그의 도공의 심정에서 비롯된 겸손이 아닌지.  

 

글을 마무리하며, 도공의 심정에 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주의 진흙이고 주는 토기장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손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여기서 창조주는 토기장이로 비유되었고 인간은 진흙으로 빚은 토기로 묘사되어 있다. 그 관계는 부자지간으로 단순히 사물이나 피조물로 국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공의 심정 즉, 야훼의 심정은 그런 것이다. 그의 손이 닿을 때 작품이 되며,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그는 제2의 창조 행위를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어찌 유한한 인간이 절대자의 위치에 서게 될 때 욕심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으며 욕망의 실현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비어있음’으로 돌아간 겸손한 마음. 김한사의 그릇은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다시피 서구의 미술에 반하여 한국의 미는 비단 작품의 결과물에 제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 곧, 욕망을 포기함으로 작가적 위치와 작품을 취한다. 예술은 욕망의 해소가 아니며 욕망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욕망을 인정하여 내놓음인 것이다. 이것이 서구의 미술사와 동양의 미술사가 달랐던 근본적인 차이다. 이러한 사실이 김한사의 작업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가 만든 그릇은 사치스럽지 않고 예술적 욕망을 과시하거나 명성을 위하여 전시되지 않는다. 거기서 필자는 김한사의 그릇에서 겸손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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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 흔적
글 | 조현정

 

공간화랑 2008.12.03~2009. 1.18 

사람에게는 늘 지난 흔적이 따른다. 그것이 얼굴이 나타나는 주름이든, 쇠약해진 몸이든 알게 모르게 새겨지고 자란다.  그런 점에서 세월은 집요하게 공평하다. 그러나 흔적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지난 흔적을 일목요연하게 목록 세우거나, 기억에 맡기고 이따금 되새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질서 없이 내버려두거나. 김승영은 이들 기억을 무차별하게 수집해서 늘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묻는다.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은 어떠했는지, 이 사람의 기억을 보관해도 좋은지. 그 결과가 그의 이번 전시이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이 끝도 없이 올라가는영상 작업은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같다. 무심코 홀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이 자체가 작품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보낸다. 서로 두리번거리며 이름의 나열 사이에서 연관을 찾아내기 위해 골몰한다. 이윽고 그 자체가 작품임을 알게 되면 약간의 허탈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내 아는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 관계 맺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규정되는 스스로. 마치 거울에 비추듯, 수면에 드리워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 내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나를 증거한다. 작가 김창기가 알고 있는 김승영, 학예사 최관우가 알고 있는 김승영, 미술평론가 고충환이 알고 있는 김승영. 이들은 저마다 다른 김승영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차이는 엄청난 이격을 보일 수도 있고, 대동소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합이 김승영은 아니다. 김승영이 그들 각자에게 부여한 의미와 역할이 다르듯, 그들로부터 파생된 김승영 역시 본질과 별개의 의미이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무수한 명함과 무수한 얼굴들 사이에서 김승영이 택한 이름은 스스로에게 각별한 의미이거나 혹은  무의식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저 반복되는 무수한 이름 속에서 작가로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무척이나 열심인 김승영을 되짚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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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글 | 박진호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반면 추억할 일이 없다는 것은 젊다는 얘기고, 추억할 일이 적다는 것은 심심하게 살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갈수록 추억이 많이 떠오르는 요즘 나는, 나이를 제법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일 테고, 또 삼삼하게 살았다는 말도 된다. 나름대로...  

추억에 젖다 보면... 어쩌다 작은 슬픔에 젖을 때가 종종자주자꾸 생겨난다. 먼저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자주자꾸 생겨나고, 그들이 종종자주자꾸 생각난다.  

처음에는 정말 되게 슬펐다. 누구였더라... 제일 먼저 보낸 사람이... 제일 먼저 가신 분이... 

큰 매형 그 다음 대학 2년 선배 병운 형 그 다음 둘째누나 그 다음 첫째 작은 고모 그 다음 큰 고모 그 다음 큰 이모 그 다음 엄마 그 다음 셋째 고모 그 다음 육촌 조원이 형 그 다음 당숙모 그 전에전에 훨씬 전에 외삼촌 순서가 엉키기 시작한다... 처음 세 번째까지는 울었다. 음,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엄마 때가 제일 슬펐다. 크게 슬펐다. 그래서 불쌍한 막내라고 하나보다. 마지막 꼬래비로 태어나서 막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는 게 막내인가보다. 근데 정말 그럴까?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신파적이기도 하고 고삐리 감상 같기도 하다 아니아니 찬찬히 생각해 보면 소월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하고 영랑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희곡 어디에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좋아 하는 내 동갑내기 함민복 시인의 산문에 나오는 글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좋아 하는 한명희 시인의 시 어느 한 구절 같기도 하다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그들 글 어디에 삽입되어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사실 이 문장을 내가 처음 접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때 3학년은 아닌 것 같다 그때쯤 나는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라는 말을 두어 번 인용하며 사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말을 하며 내 감정 표현을 했을 때 내 친구 중 가장 문학에 가까웠던 병훈이가 와우! 하며 너 새끼야 그 말... 멋있다... 네 머리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병훈이가 학사경고 맞고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기 때문에 내가 3학년 4학년 때 그런 얘기를 나눴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뉴질랜드로 이민 간 병훈이가 보고 싶다 어쨌든 조각난 하이쿠의 한 구절 같은 이 문장은 사진 작품 제목이었다 병훈이 불알친구 경우가 다니던 모 대학 사진반의 어느 여학생이 동아리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의 제목이었다 나는 병훈이랑 함께 경우에게 술 얻어먹으러 전시장에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품도 보고 팜플렛도 들고 나왔던 것 같다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말하는데 나는 그 여학생을 못보고 나왔다 아니 봤는데 내 타입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품은 아마도 아스팔트 위에 고여 있는 물을 전면에 클로즈업하고 뒤는 별다른 배경이 없었던 것 같고 하늘은 먹구름 사이로 약간 하얀 하늘이 살짝 내비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기억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가공의 기억 기억의 가공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기억을 가공하기도 하고 가공의 기억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다. 별거 아닌 옛날 일이 기억나면서 혼자 쑥스러워지기도 하고, 좀 창피했던 일도 살다보면 그런 일쯤이야 일도 아니지, 아무렴,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제대로 된 기억이라는 것에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사실 기억만이 아니라, 큰일에는 담담덤덤하고 작은 일에는 울렁울렁두근두근 하기도 한다. 마음속 메커니즘이 좀 바뀐 것 같다.  

여하튼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는 26, 7년 동안 내 머릿속을 들락거렸던 거다. 최근 이 문장이 떠오르기까지 최소 몇 년 동안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었다. 이것은 정확하다. 이 문장이 떠오른 것은 전적으로 요즘의 내 디프레스 상태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진척 없는 책 쓴답시고 작업실에서 새벽녘까지 있으면서 어쩌다 가끔씩 달을 찍고, 달이 없을 때는 하늘도 찍었다. 그러고는 디지털 카메라 액정으로만 확인하고 바로 컴퓨터에 넣고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다. 책 써야 하니까... 그런데 자꾸 슬프고 힘든 일이 연이어 생기면서 패닉이 이런 거구나 라고 느끼던 차, 내가 저술가가 아니라 사진가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그것을 깨는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전….

상념에 젖어 모니터로 달을 보고, 달 없는 하늘을 보는데, ‘확’하고 바로 이 문장,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 순간! 같은 뿌리이면서 일찍이 먼저 개념을 잡았던 ‘저 달을 내가 움직였다’와 갈라진다. 달 없는 하늘, 움직이다 만 달은 나에게 또 다른 어떤 의미를 던졌다. 그랬다. 달을 찍을 때는 달을 보고 무엇인가를 기원했다. 달이 없을 때는 기원할 것이 없었다. 달은 신(神)이니까…. 없는 신에게는 기원할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움직이지 않은 달은 신이 아닌 것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걸 왜 몇 년씩 찍었는지를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라는 이 문장이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될 것 같다. 큰일이라는 것이 뭐 있겠는가? 세상일이 크다면 다 큰일이고 작다면 다 작은 일 일터... 그렇다고 슬픔이 기쁨이 될 수 있는 것 역시 아닐 터... 어쩌다 큰 슬픔이 있을 때 그것을 작게 느끼는 것 또한 삶의 지혜일 터... 살 때까지는 나름대로 지혜롭게 사는 것 또한 중요할 터... 어쩌다 느낀 작은 슬픔이 있을 때,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 주변 사람들을 자꾸 보내게 된다는 것... 내가 작가임을 느끼게 되는 것...  

2008.9.7. 새벽. 06.09.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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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 narration - 모순과 균열 속의 싸움
글 | 이연식

나는 [...] 수없이 많은 승냥이를 습작했다. 그러나 승냥이는 자꾸만 개처럼 그려졌고, 그때마다 나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애정이 부족되어 있음을 절감하곤 하였다.

- 소설 <훈장>에서 -

1975년에 소개된 <훈장>은 소설가 이외수의 등단작이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승냥이를 그리는 미술학도가 등장한다. 이외수는 1981년에 발간된 소설 『들개』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묘사한다. 이번에는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남자가 99마리의 들개를 한 화면에 그려 넣고는 영영 세상을 떠난다.

이동환이 이번 전시에 내놓은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2008년)은 어쩔 수 없이 이들 소설을 연상시킨다. 이외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보고 거의 자동적으로 이외수의 소설을 언급한다. 하지만 정작 이동환 자신은 이런 비교를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이외수를 즐겨 읽었던 1980년대에는 이외수를 읽지 않았고 1990년대에야 이외수의 『벽오금학도』를 읽었는데, 선계(仙界)와 신통력 운운하는 이 소설이 영 마뜩찮았다. 이동환은 조정래의 소설처럼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딘 채로 건강한 실천의 전망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높이 산다.

이동환 자신은 이런 분류에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들을 보면 그가 1980년대 이래 한국의 미술계에 드리웠던 커다란 그림자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그림자를 명료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거칠게나마 말하자면 ‘미술은 사회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적시하고 개선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미술은 자본주의의 탐욕과 모순으로부터 벗어나 고유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등의 관념이다. 이들 관념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며 충돌하며 혼재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미술가, 미술학도들은 그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1993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체제에 저항하고 계급 모순을 고발해 왔던 ‘민중미술’은 방향을 잃고 급격히 와해되었다. 개혁성을 지니면서도 억압적이고 고루했던 김영삼 정권 말기에 닥친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 전체를 돌이키기 힘든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경제적 위기 자체보다 더 끔찍한 건 고통과 불안을 맛본 사회가 빠져든 배금주의라는 수렁이었다. 이제 추상적인 혹은 초월적인 가치에 대한 추구나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다. 당연히 한국의 미술계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사회의 착취와 모순을 준열하게 고발하는 대신 미술품을 구매하는 이들의 취향에 적극적으로 영합했고, 이제는 주류사회와 긴장관계를 유지하기를 포기한 채 물질적 가치와 예술계 내부의 권력만이 존중할 만한 가치임을 뻔뻔스레 내세웠다.

이동환의 2001년 개인전 『길을 잃다』에는 IMF 직후의 좌절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화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듬을 계기를 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이동환이 겪은 어려움은 그가 그림 속에서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길을 잃다』에서부터 인물이 공간에서 소외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비록 초기의 작품이지만 1995년의 개인전에 출품된 그림 속 인물들이 땅에 발을 단단히 딛고 강건하게 서 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대신에 이동환은 인물이 자리 잡은 혹은 자리를 잡아야 할 공간 자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에서 인물이 완전히 추방된 건 아니지만 이전처럼 당당하게 발을 붙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동환의 그림 속에 남아 있기 위해 인물들은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첫째, 분절된 움직임으로 분해된다.

둘째, 뒤틀리고 냉소적인 유머의 동반자가 된다.

첫 번째 유형은 2004년의 『아무렇지 않게...』와 2005년의 『흔들리는 대명사』, 두 차례의 개인전에서 등장했다. 『아무렇지 않게...』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어떤 이야기의 진행이 암시되지만 『흔들리는 대명사』에서는 이야기로서의 성격은 약화되고 ‘분절된 움직임의 연속’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두 번째, 뒤틀리고 냉소적인 인물은 이미 1995년의 개인전에서 단초가 보이고 2001년의 개인전에서 조금씩 부각된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2007년의 개인전 『병적인 웃음』에서 마침내 ‘양(羊)’의 탈을 쓰고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인물이 묘사되는 두 가지 방식은 곧 이동환의 그림에 내재된 두 가지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방향으로 뻗은 힘 때문에 이동환의 그림은 이따금 혼란스러워 보이거나 여러 층위의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향성은 이동환의 그림을 규정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앞서 예를 든 이외수는 물질적 탐욕에서 자유로운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의 사회적 맥락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서는 회의적(적대적)이었다. 예를 들어 그의 소설 <훈장>에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들에게서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계(仙界)를 바라보는 이외수의 입장에서야 이처럼 속 편한 소릴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의 역할과 방향을 직접 짊어진 예술가에게는 ‘이해타산에서 벗어난 순수한 예술적 가치’와 ‘현실에 대응하는 예술의 실천적 역할’ 양쪽 중 어느 한쪽을 쉬이 팽개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동환의 그림은 이 두 가지의 방향을 끌어안은 채 모순과 균열을 감내하면서 벌이는 싸움이다.

 

『아무렇지 않게...』와 『흔들리는 대명사』에서 인물들의 움직임은 분절된 채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들 전시에 나온 그림들은 동물과 인물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연속촬영한 머이브리지의 사진(1872년부터)이나 뒤샹의 초기작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년) 등과 쉬이 비교된다. 그렇다면 이동환은 왜 새삼스레 앞선 이들의 작업을 되풀이한 걸까?

나는 우선, 이동환이 화면에서 인물을 ‘지우기’ 위해 인물을 움직임으로 분해했다고 본다. 인물을 지우려는 시도는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 인물이 화면 속 공간에서, 바꿔 말해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고민, 암중모색의 방법론이다. 머이브리지와 뒤샹 등의 작업과 이동환의 그림의 결정적인 차이는 머이브리지 등의 작업에서와는 달리 이동환의 그림 속 인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은 앞으로 걸어가는 것인지 뒷걸음질을 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어떤 경우에는 뒷걸음질을 치는 듯한 느낌이 더 선명하다. 꼭 비디오테이프를 앞뒤로 빨리 감을 때 볼 법한 모습들이다. 인물들은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신 마치 시계추처럼 하나의 극과 다른 극 사이를 왕복한다. 이 왕복운동 속에서 인물들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마치 허깨비나 잔영인 듯 가벼워져서는 끝내 운동의 ‘궤적’으로만 존재한다.  

이동환은 투사의 면모를 지닌 예술가다. 문제는 예술을 수단으로 삼은 싸움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적의 힘이 너무 강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표적이 자꾸 움직여서 겨냥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彼我)도 불분명해진다. 척결해야 마땅할 부정적인 요소들이지만 그것들은 모습을 바꿔 가며 이리저리 숨어들었다 갑작스레 나타나며, 심지어 우리 편에서도, 내 안에서도 자라난다. 이를 이동환은 ‘양(羊)’이라고 봤다. 이동환이 그린 ‘양’은 그런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이다. ‘양’은 거대 권력이고 모순이고 위선이고 허위의식이다. 그래서 작가는 양을 “내가 죽여야 할 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놈은 손이 닿지 않은 멀고 높은 곳으로 물러났는가 하면 어느 새인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작가는 절망 끝에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병적인 웃음”(2007년 개인전의 제목)이다.

움직이는 표적을 쫓자면 이쪽도 움직여야 한다. ‘양’을 쫓아 좁은 길을 지나 비바람을 뚫고 함정에 빠져 가며 내닫는다. 그래서 ‘늑대’이다.

이동환의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에는 똑같은 모습의 늑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마릴린 먼로나 모나리자를 복제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처럼. 그런데 이 늑대들은 각각 다른 여러 나라의 국기를 달고 있고, 이들 국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들, 바꿔 말해 지구상의 나머지 지역을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농단하는 깡패 나라들을 가리킨다.

‘이들도 믿을 수 없는 놈들이란 말인가?’

국기의 친숙하고 말끔한 디자인은 늑대들의 야성을 속박하는 매듭처럼 보인다. 늑대들은 국기 뒤에서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마냥 눈을 번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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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온 아트 컨설턴트 피오나 맥마틴”

 

- 미술계의 불황에 미술투자자와 콜렉터는 전문 강좌로 준비한다 -

세계적 경기침체로 미술업계도 문화불황이다. 이럴때 미술품의 구입도 좋지만 미술의 안목을 높이기 위하여 미술 투자와 콜렉터르 위하 전문강좌는 좋은 현실적인 좋은 대안이다.

아트 콜렉터를 위한 전문강좌와 전문 아트컨설팅을 위한 아트센터가 문을 연다.  열린다. 오는 11월부터 문을 연 강남구 역삼동의 “프라임 아트”센터(www.primeart.co.kr)에서 미술품 투자와 소장을 원하는 아트 콜렉터를 위한 컨설팅과 전문 강좌가 개설되었다.

캐나다 출신의 해외 미술담당 매니저인 피오나 맥마틴씨는 숭실대학교 전임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아시아 투데이 신문사의 컬럼 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구입이 어려운 18세기, 19세기 낭만주의, 인상주의, 입체주의등 해외의 고가미술품들을 해외 옥션과 갤러리에서 직접적인 구매대행을 한다. 물론 유창한 한국말 솜씨(한국말 대회 최우수상 수상경력)로 고객들의 성향에 적합한 미술품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추천하는 업무를 맏고 있다.   

또한 아트센터의 미술전문강좌는 아트 콜렉터와 미술투자자, 미술애호가를 위한 반가운 소식이다.

아트 콜렉터를 위한 강좌의 특징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그리스, 기독교미술, 중세와 르네상스미술, 근.현대 미술까지 폭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 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술투자와 소장가치 분석, 옥션과 세계미술 동향 분석까지 전문적인 강좌를 알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남편이자 프라임 아트센터를 운영하는 장준영 박사는 독일에서 서양미술사와 고고학을 전공하였다. 학업과 더불어 오랜기간 유럽에서 활동하며 프랑스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의 협조로 전자출판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미술투자자와 소장자를 위한 컨설팅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2005년도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디지털 복원을 맡았던 장 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강좌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알면 현재를 이해하듯이 미술투자와 소장도 미술역사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짧은 100여년의 19세기, 20세기 미술품만 가지고는 충분한 시각을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미술과 기독교 미술, 중세, 르네상스미술을 전반적으로 보고 학습함으로써 미술 작품의 관찰력을 높이고 소장 가치성의 판단을 함양시키며 유동적인 미술시장과 투자정보를 융합할 수 있습니다.”

현재 프라임 아트 센터에서는 아트 강좌와 컨설팅 이외에 대형 미술 전시기획대행과 디지털사진강좌도 열리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 강의 맡으며 강의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이 많이 배우고 보람을 느낀다는 장준영 박사는 정규적인 강좌이외에  월1, 2회의 스페셜 강좌를 마련하여 유럽문화와 역사, 미술투자, 국내외 옥션과 작가분석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강좌 및 컨설팅 문의: 02-584-7172 www.prim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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