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agazine 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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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현 | 답이 없기에 오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 | 김용민

 

시야에 나타난 일곱 개의 다리는 보기에 조금 불편한 눈높이만큼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작가가 만든 다리 구조물에 올라서자 그제야 보이는 일곱 개의 다리작업, 그 안에 남은 ‘물 위의 드로잉’이 개마고원처럼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아연판을 휘어 만든 네모상자에는 언제 말랐는지 모를 물의 층이 흔적으로만 보이고 있으며 ‘그 장소’와 ‘한 동안’의 시간은 곰팡이와 가루진 물감의 자국 속으로 숨어 버렸다. 여기서 사건은 시작되었으니 도대체 한국전 때 파병된 일곱 명의 실종된 프랑스군과 이 전시공간에 놓인 일곱 개의 다리작업이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은 누구에게 있어서는 불행한 사고로, 또 누구에게 있어서는 ‘사실의 계열화(mis en série)’로 추구되는데 사건의 공통되는 점은 순간적이다는 데 있다. 하여간 그 둘(사실들)은 전혀 인과성이 없이 기표와 기의의 전복으로 서로의 관계를 계열화시키고 있다. 물론 한국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서로에게 교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천구백오십 년의 한국과 이천구 년의 한국과의 차이에서 오는 동시성이다. 이렇듯 일곱 명의 프랑스군의 실종됨은 그 의미의 경중을 떠나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빨아들이고 아이온(Aion)1)에 비췬다. 그것이다. 아이온에 비친 표면 효과 이것은 조형화된 물 위의 드로잉과 수렴된 해석이다. “실증적 태도들은 물위의 다리를 건넌다.” 거기에 철학자가 아닌, 역사학자가 아닌 예술가의 특권이 있다. 어쩌면 ‘실종된’ ‘일곱 명’의 ‘프랑스군’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우연찮게 일치하게 된 시테(Cite)섬의 일곱 개의 다리에 간섭되어 끊임없이 순환하는 타자성과 동일성을 형성시키는지 모른다.2) 여기에 순수사건3)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등장하게 되었고 명분을 입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사실(史實)들을 열거하여 그 시대를 정립하며 하나의 사관을 만들고 미래를 전망한다.4) 반면, 작가의 시선은 재현(새로운 계열화)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작가에게 있어서는 보이는 측면이 우선한다. 이 말은 재현의 발단이 된 실종자들을 추적하는 일련의 활동들과 그것으로 취해져 예술의 범주화 되어버린 작업의 경계선에서 오는 감각의 느낌들의 가시화다. 여기서 예술의 위치는 그 경계에 위치하여 마찰되는 감각이라 할 것이다. 이 마찰되는 감각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스케치와 작업과정이 담긴 영상물 그리고 그 결과물과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용사들의 인터뷰들이 시각적으로 ‘그 장소’와 ‘한 동안’에 소급 적용되고 있다. 솔직하게 참전용사의 인터뷰를 이해하고 프랑스어로 쓰인 실종 군인들의 파일을 독해할 한국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공간에서 작업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예술의 범주로 수렴되는 것이며 새로운 계열화를 시사한다. 무의미하다 할 수 있는 물 위의 드로잉에서 한 작가의 사건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이후 비신체적인 ‘무관심적 목적성’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전시공간의 한 벽을 부수고, 그 자리를 가로질러 설치된 다리 구조물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하향은 통시적으로 유희되고 있다. 약간은 아찔할 것이며 시선의 변화에서 오는 어떤 내러티브가 흐르게 될 것이다. 즉, 새로운 계열화 답은 없기에 오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1) Gilles Deleuze/이정우 옮김, 의미의 논리, 한길사, 2003, p. 283

2) 현은 삼성문화재단 지원으로 Cite Internationale 레지던시 프로그램(2007-2008)에 참여하였다.

3) Gilles Deleuze, 2003, p. 96 “사적인 것도 공적인 것도 아닌, 집단적인 것도 개인적인 것도 아닌, 동시적이라는 점에서 이 중성 안에서 그만큼 무섭고 능력 있는 자위.” 일곱 명의 실종자들은 그의 작업에 들어옴으로 사적이지도 역사적이지도 않은 동시적이다.

4) 주체의 총체화나 헤겔식의 변증법적 계열화로 나현의 작업을 설명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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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WANG | 그의 기억이란 상자, 그리고 기억의 장소
글 | 이기언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조명하고 미래의 지평을 연다. 우리들의 기억이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위축되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 기억은 늘 재구성된다. 베이컨은 기억과 관련하여 비유적으로 구석으로 촛불을 들고 갈 때 방의 나머지 부분은 어두워진다고 표현했다. 그는 베이컨이 말한 그 어두운 빈 방 속 촛불을 들고 서 있다. 짙은 어둠의 방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곳은 그의 기억 속 어느 지점일까. 또한 심연으로 밀어 넣고 있는 망각은 과연 의도적인 것일까. 그는 떠남에 익숙한 사람이다.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심정으로 선택되어지는 자신의 과거들. 필사적으로 생존해야할 기억 속 암수 한 쌍 씩을 고르며 곧 다음 세대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만을 쫒으며, 종과 횡을 가로지르던 그는 지금 어디를 향해 accelerator를 밟는 것일까.

 

그와의 만남 

죽을 뻔 했던 순간을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과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고통을 비슷한 경험의 수치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일동 작가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사고를 당했었다. 하지만 그가 죽을 뻔 했던 사고는 두 번. 사고 직후의 순간마저도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잠깐 동안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사고 이후의 삶에 대한 뒤처리만이 버거울 뿐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웃으며 말하던 황일동 작가, 그를 처음 만나 가장 궁금했던 것은 미술에서 떠나 있었던 시간이었다. 미술계를 떠났다던 그의 5년이란 시간이 개인적으로는 궁금했다. 황일동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때 당시 스스로가 너무 순진했기에 멋모르고 미술계에 대한 치기어린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전시회를 해도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이 없는 무명작가의 고독도 한몫했지만, 또한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그 날 이후 다시금 황일동 작가를 만났을 때 미술 작업을 떠나서 어떤 것을 했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그가 미술계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던 당시의 5년의 기록을 그의 작품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그의 작업 

작품을 볼 때도 그의 GS시리즈 중 오토바이형상을 띄고 있는 작품(GS-01)은 어딘가로 향하고 싶은 속도와 역동성만을 지닌 채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기계를 보면서 하나하나의 기관이 지니는 유기체적 기능미를 꼽는다. 쇠로 만든 나무작품에 물을 주어 산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의 연장일 것이다. 심지어는 정적으로 보이는 유리상자의 경우에도 이미 자신의 현재에서 유리된 것들을 격리시켜 놓았으며, 작업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움직임의 느낌을 자아낸다. 강철 프레임의 유리상자, 그 안에 들어 있는 작가의 개인사와 관계된 여러 가지 사연 있는 물건들. 그 상자 안에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미술계에서는 사라졌던 그의 5년의 경력이 놓여 있었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쪽의 활동하면서 황일동 작가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비롯하여 그림과 여러 사연을 지닌 물건들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비친다. 부서지기 쉬우면서도 존재감 있는 경계를 만들고 있다. 관람자가 서있는 공간과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았던 5년이란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작가가 보내왔던 시간의 결과물들은 투명하게 자신을 비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제 영정이라 보시면 되요.” 황일동 작가는 자신의 이번 작품을 그렇게 설명했다. 개인의 역사를 담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바꾸어 말하면 이는 기록의 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의 흔적을 정리하기 시작했을까?

 

그의 작업실  

성수동의 도심 속 공장지대는 작업실의 위치상으로도 다리 하나를 두고 청담과 압구정동이 있어, 도시의 콘트라스트를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관상 주변의 자동차 수리소와 맞붙어있는 이곳은 흡사 창고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자체로 도심 속 공업도시라는 스산함을 느끼게 한다. 기름내와 자동차 소음 담배냄새와 공기 중의 쇠가루가 날리는 그 곳은 작가 개인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황일동 작가의 유년시절 제 일의 꿈은 오토바이 선수였다. 성수동은 그와 오토바이의 시작이고, 그가 커스텀 바이크라는 오토바이 작업으로 미술을 하게 된 장소였기에, 또한 그가 미술계로 돌아오게 된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황일동 작가는 4년을 넘게 성수동에 있었다. 그 간 미술시장의 호황과 불황의 반복으로 작가는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언제든 이곳(성수동)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을 그리고 자신을 정리를 하기 위한 틀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활성적 기억의 활성화 

[기억의 공간]에서 알라이다 아스만은 장소가 고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문화적 기억 공간들을 구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간은 기억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기억을 정확하게 증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황일동 작가와 그의 작품 그리고 작업실의 관계는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어떻게 재구성되며 의미를 발생시키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황일동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기념비적인 작업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 기록을 재구성하고, 이를 다시금 비활성화 된 기억들을 붙잡고자 하는 예술적 노력이 그의 작업 전반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은 이 유리상자의 작업과 관련하여 그가 성수동의 작업실을 떠나게 될 때 그 곳에 남겨진 모든 것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계획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잊혀져가고 소외받는 비활성적인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노력은 아직도 그를 가로지르게 하는 원동력이다. 쇠의 견고함과 유리 투명함 속에 작가의 앞으로의 계획이 잘 담겨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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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WANG | 고장난 괴물 기계
글 | 정원

 

작가 황일동의 작업실에는 시체들이 가득하다. 무엇의 시체들인가? 서울의 공장지대 성수동에 위치해 있는 그의 작업실은 원래 예술가의 공방이 아니라, 커스텀 바이크를 제작하던 일종의 공장이었다. 작가는 이 곳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커스텀 바이크를 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제품 만들기를 그만두고 그는 예술가가 되었다. 어떻게? 그는 어떤 과정을 겪으며 예술가가 되었을까?

 

물론 작가의 본래 전공이 조각과 회화이고, 순수예술로 유학과정까지 마친 이력을 꼽아 그 과정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면상의 이력이 누군가를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바이크에 미쳐있었고, 그 속도감을 사랑했으며,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희열을 느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묻자. 어떻게 바이크는 예술이 되는가? 정답은 여기에 있다. 바로 ‘죽음과 해체’를 통해서. 유기체가 그 기능을 멈추었을 때 죽음이라고 명명하듯이, 기계도 본래의 제 기능을 멈추면 죽음을 맞이한다. 바이크의 부품은 떨어져 나가고, 철은 녹이 슬고, 아름다운 모습은 와해되어 괴물로 변한다. 시체의 모습이다. 바로 이 때 작가는 그 시체들에 눈길을 돌리고 그 유해를 모아서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본래의 기능을 잃은 기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이건만, 작가는 그 체계를 거슬러 기능이 정지된 잔해를 모아 새로운 형상을 부여했다. 바로 이 순간, 기계들은 자본주의의 상품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작업을 현대 미술의 역사에서 찾아보자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이 휘몰아친 후 자주 등장한 ‘폐물집합 예술(JUNK ART)’ 혹은 앗상블라쥬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독일의 슈비터즈(Kurt Schwitters)가 폐품이나 쓰레기 등의 산업폐품을 미학의 근거로 삼았던 ‘메르쯔(Merz)’와 이런 폐품을 추상표현주의 기법과 함께 캔버스에 통합한 라우셴버그의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 혹은 자동차 파편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채색된 자동차 파편 위에 그만의 독특한 색깔을 첨가하여 강렬한 시각효과를 창출해 내었던 존 챔벌레인(John Chamberlain)을 떠올릴 수 있다.

 

더욱이 작가 황일동의 작업실이 위치해 있는 곳을 생각해 본다면,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작업들과의 연관성은 분명해 보인다. 알려져 있다시피 성수동은 철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전성시대를 거친 후 이제는 낙후된 공장지대로 남아있다. 첨단을 꿈꾸는 IT 강국 코리아에서 철로 대표되는 제조업 중심의 전성시대는 이제 퇴물로 여겨진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이런 폐물의 가치에 눈을 돌렸던 서구의 작가들처럼, 소멸되어가는 산업화의 재료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들과 비교해 볼 때, 작가 황일동의 작업의 바탕은 동양적인 사유방식이 뿌리깊게 내재해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가 인생을 이해하는 방식이 녹아들어 있다. 서구의 작가들이 산업 문명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 조각, 폐 타이어와 알루미늄등을 사용했다면, 황일동에게 이런 기계의 잔해들은 자신의 몸 그 자체이다. 기계는 곧 그의 신체이다. 이 때문에 그의 손을 통해 살아난 기계의 모습들이 마치 인간의 간이나 허파 혹은 심장과 같은 장기의 일부분처럼 유기체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까이가면 남은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고 있는 박동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이 작업들에서 곧잘 발견되는 흘러내리는 물감과 녹슨 철의 질퍽한 흔적과 자국들은 마치 생명의 탄생에서 나오는 양수의 터짐, 혹은 죽은 자의 몸에서 나오는 축축한 물, 끈적한 피를 연상시킨다. 이들은 죽어가는 생명의 고통인가, 아니면 마지막 남은 숨까지 바쳐 다시 살아나고 싶은 마지막 몸부림인가.

 

그러면 작가는 왜 이토록 죽음의 이미지에 몰두하는가. 대답은 일견 명쾌하다. 삶 자체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을 위시한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여기에서 희망을 말하는 건 이미 거짓이라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이 앎이 허무로 빠져들지 않는 이유는 작가가 이미, 죽음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경험할 때,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는 역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지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죽음과 삶의 순환을 응시하고 그 연결고리를 잘 파악하는 것. 그래서 거듭 죽음과 태어남을 통해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일본의 선사 무묘앙에오로부터 영향받은 것임에 분명해 보이는 이런 사유들이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때로는 지나친 자의식의 과잉으로 넘쳐 위태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마치 제의를 치루듯 자신과 옛 기억들을 박제화 시킴으로써 고통을 통찰하고 이를 극복해 내려는 작가의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적극적 의지가 바이크의 날렵한 외관과 속도감에서조차 그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작가를 예술가로 변모시킨 힘이 아니었을까.

 

지금 여기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다. 

지금이야말로 죽을 때다

지금이란 끊임없는 죽음이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끊임없는 無의 연속이다. (무묘앙에오,『지구가 꺼질 때의 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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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순 | 철정회화(鐵釘繪畵) 혹은 붓으로부터의 일탈
글 | 이돈순

 

‘철정회화(鐵釘繪畵)’는 일명 ‘못 그림’이다. 붓으로는 온전하게 ‘못 그린’ 즉, 붓 대신 못을 사용해 완성된 그림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이는 동양미술의 전통적 맥락 속에서 출발하여, 못(鐵釘)과 같은 금속재의 표현 가능성을 실험해 봄으로써 현대적 소재와 회화적 표현방식의 결합을 모색하는데 붙여진 이름이다.

 

작가는 생활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과 식물들을 스케치하고 이를 조형의 목적에 따라 가공한다. 때로는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고, 때로는 꽃의 생활사를 관통하는 치열한 생존의 원리를 조형의 법칙에 대입시켜보기도 한다. 또한 일상적 사물(objects)과 식물로서의 꽃(자연), 시각적인 이미지와 촉각적, 청각적인 이미지의 결합 및 상호작용성에 바탕을 둔 공감각적 조형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정원에서] 및 [Flower], [Swimming], [통섭(通涉)] 등의 연작은 일상 오브제와 식물 이미지의 결합이라는 종래의 작업 경향을 유지하면서도 못을 모필 삼아 꽃과 식물, 새와 물고기, 곤충 같은 사물을 묘사하고 있으며 때로는 모필로 그려진 사물들과 서로 대구를 이루며 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결과적으로 평면회화에 빛과 요철을 부여함으로써 끊임없이 회화 외적인 존재방식과 결합해가려는 욕망의 기제로 작동하며, 나아가 전통과 현대, 회화적인 것과 조각(부조)적인 것, 시각적인 것과 촉각(청각)적인 것 등 익숙하거나 낯선 요소간의 결합과 충돌이라는 새로운 시지각적 체험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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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수 | 타의적 풍경
글 | 안경수

타의 : 남의 뜻

타율 : 자기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명령에 따르지 않고 다른 힘의 강박(强迫)·구속 등에 따라 행동함.

 

나의 작업은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종속적이고 가변적인 대상들로 조합된 풍경그림이다.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특정한 대상들을 장난감이라는 유희적인 대상으로 알레고리(allegory)화 하고 그것을 회화로 그려나가고 있다.

 

이번 풍경은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준 깁스와 갇혀진 놀이방의 공간적인 경계에서 상당히 벗어나 공원이나 장치된 무대로 확대되어 있다. 이것은 강한 폐쇄성을 드러내던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구속된 풍경이라는 성격에서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화려해진 색채의 변화는 이전의 표현과는 달리 대상을 재현해 나가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며 대부분 시각적으로 편해 보이지 않는 색을 사용해서 전과 같은 자극을 주도록 했다. 그리고 이전에 주된 소재였던 깁스를 한 소년이나 현재의 플라스틱병정은 각각 비슷한 사회적인 속성들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회적이고 가변적인 현상을 이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깁스는 신체의 보호와 억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용품으로써 이야기 되어왔고, 장난감병정은 가변적인 질료와 군인이라는 대상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것을 미니어처로 보여주고 있다. 깁스, 놀이방, 그리고 현재의 소재들은 모두 사회 속에서 발견된 문제적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그리려고 하는 소재들은 모두 개별성 없이 존재하며 일회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의 대상성과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대상의 이면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의 과정은 장치된 작은 무대 공간에서 일종의 놀이를 겸한 장난감 병정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화면의 구도를 구상한다. 디스플레이 된 공간은 인공적인 세트장처럼 분위기가 연출되고 간단한 미니어처로 만들어 진다. 설치된 풍경은 사진 촬영을 통해 이미지로 전환하고 본격적으로 화면에 그 이미지를 담아나간다. 회면에 그려나가기 이전의 디스플레이는 구조적인 의미를 담는 행위다. 병정들을 위치하는 대상은 구조의 주체이며 그 대상에 작동되는 병정들은 구조의 객체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공간은 주체와 객체로 양분되어 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 된 공간은 축소되어 있으면서도 화면을 확대하고 있는 가변적인 환상풍경이다.

 

풍경작품 외에 단일의 병정시리즈를 그린 작업은 그 대상에 대한 존재감을 부여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플라스틱병정 얼굴들을 지우거나 인간의 근육이나 내장을 병정의 일부에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이유는 이것을 유기체적인 대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도이며 그것을 통해 기존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일관성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은 대상의 존재하는 개별성을 조금씩 구체화해 나가려는 의도이다.

 

내가 그려낸 화면은 실제하는 공간이나 풍경과는 시각적으로 괴리감이 있다. 모든 사물들은 인공적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마치 연극 세트장 같은 느낌의 일회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으로 보이고 있다. 특히 채워진 장난감들은 유기적인 느낌으로 비대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플라스틱병정은 화면 속에서 의도적으로 의인화 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발견된 일회적이고 종속적인 익명의 대상을 이야기하기 위한 내 작업의 알레고리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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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 Studio inStudio
글 | 이소영

 

2년간 사용하던 작업실의 축소 모형을 만들고 내부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형 중 가장 단순한 구조의 공간이었다. 비어있음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작고 간단한 공간이지만 그 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과 잡념, 감상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숲처럼 보였다. 내 기억에 의해서 지나간 상황과 시간들이 또 다른 상황과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숲은 점점 더 거대해진다.

그 곳에는 매일 차갑고 푸른 공기가 의식을 명료하게 하는 새벽이 오고 나는 분주함으로 정신과 몸의 모든 것들을 일으켜 세워야하는 낮을 보낸다. 가라앉았던 모든 것들이 들떠 부유하던 시간이 지나면 외롭고 불안한 기운이 작업실을 붉게 물들이고 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세계의 경계를 경험하는 밤이 시작된다. 하얀 작업실 사진 위에 내가 그 곳에서 경험하는 상황과 시간성의 색깔을 입히고 오브제를 놓으면서 작업실에서의 하루를 재현해 보았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한이 먼 풍경처럼 물러나고 나의 시선이 지배하는 상황이 드러나면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진다. 그것의 객관적 현실성과는 관계없이 화면 안에서의 또 다른 질서와 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로 독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수많은 장면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의 숲에는 정작 어떤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텅 빈 그 지점, 순간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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