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agazine vol.19

작가_성 동훈 | 유목적 사유 | 글_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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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에서 오는 힘은 무게를 갖는다. 그 무게는 시선을 깔고 앉는다. 시선이 안간힘을 쓰며 쩔쩔맨다. 보기만 해도 힘이 빠진다. 그 누가 쇳덩이에 생명이 없다했으며 그것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현상은 물리적인 힘에 수천 개의 면도날을 붙인 것과 같다. 한편으로는 피부에 시퍼런 멍이 생긴다. 다른 한편으로는 칼선에 피가 맺힌다. 책만 쳐다보는 자, 떨어지는 낙엽에 고독을 곰씹는 자, 그래서 손이 예쁜 자들은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아무렴, 기름때와 녹슨 철의 굳은살이 박인 이의 팔꿈치를 피해갈 것이다. 동물의 기름은 무겁고 짙어서 큰불을 만든다. 거기서 기화된 열기가 돌을 소화시키고 순식간에 쇳덩이를 태워 버린다. 장시간 노출된 불꽃이 초점의 가장자리를 녹였다. 보이는 것은 바로 앞에 있는 것, 내 목숨을 걸어 그것과 싸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육식의 성질이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뜻밖의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사나운 덮개를 지나 우화와 풍자다. 좀 더 예민한 자들은 자기들이 휴대하고 있는 부적과 우상을 꺼내어 비교한다. 어린 시절 장남감에 생명을 불어넣어 친구를 만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확실치는 않지만 존재의 불안과 공포가 허용한 그 시점에 모두가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꿈을 꾼다는 것, 비단 유쾌하고 재치 있다는 것,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오랫동안 물성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주었던 교훈이 여기에 있다. 객관은 표면에 있으며 그것은 단순하게도 사실이고 모든 것에 앞서고 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각하고 사색해야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 자체가 어리나 어른에 가까운 심려(深慮)다. 어른은 머리가 생성한 말을 입 안으로 감추고 혼자서 본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라. 그저 구름일 뿐이지만 열쇠를 넣어 돌릴 때, 구름은 열리고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복잡한 종교와 과학이 터무니없이 자리를 돈다. 한낮, 그 자리다. 인류의 발전은 조각구름 한 점에 담아도 부족하게 있다. 어쩌면, 주관적인 우리의 발명품이라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인지 모른다. 물론 아니지만 불안과 공포가 세계를 겉과 안으로 구분하였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은 단순한 행위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힘은 근육에 있지 않고 피부에 있다. 모든 기관은 피부를 사이에 두고 있다. 엄밀하게 은폐를 통한 공포가 아니라 이미 드러난 표면으로 공포는 잠식되었고 그것에 다가갔을 때 유쾌함이 수반되는 것이다. 덩어리(mass)에서 오는 어마어마함이다. 시간이 지나면 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덩어리가 더 이상 그 무게를 확보하지 못하고 외소해지기 시작한다. 시선은 어느덧 그 거대하고 거친 얼굴을 인지하게 된다. 충격은 언제나 최초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얼굴은 익숙하며 자연스러운 것이니 물질에 구멍이 생길 때가 바로 얼굴이 드러나는 시기다. 게다가 구름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 얼굴이 두 쪽으로 열리게 되면 한 순간 공간의 체험은 어느새 시간의 체험으로 바뀌게 된다. 거기는 뱀이 하늘을 날고 돼지가 부유하며 비행기가 이송운동을 한다. 또한 얼굴은 간대 없고 화분에서 성장한 제멋대로의 줄기가 파란 빛을 받는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나뭇잎이 아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쇳덩이에 피어난 이미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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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덩어리는 이미지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에 놀라고, 그렇게 구조화 된 것에 쾌적함을 느낀다. 쇠를 붙여보았고. 쇠를 갈아보았다. 시멘트를 부어보았고 시멘트를 깎아보았다. 모터를 심어 돌려보았고 구슬을 덮어 불을 켜보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 그(성동훈)는 황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새, 뱀, 나무, 사슴, 거북이, 인체, 코끼리, 개미를 만들었다. 이렇게 이미지와 덩어리가 만나 그 경계는 야릇한 선이 생겼다. 나무를 세웠지만 걸쭉한 동물의 피가 흐르고 있다. 황소를 깎았지만 목덜미에서 엉덩이로 흐르는 선에 돈키호테는 여성을 타고 있다. 또한 뭔지 모른 동물과 인간의 교배가 스믈스믈 피어나고 있다. 두 가지의 색스러움이 하나의 이미지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제자리에서 돌고 이제는 열리고 닫힌다. 처음에는 거칠었고 이제는 귀여움과 영리함이 자유를 입었다. 그러기까지 조각가는 땅에 수많은 이미지들을 세웠지 않았나. 삶에 대한 응축일 수도 있다. 욕망과 가능성에 대한 의지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 공간에서 생명의 피를 쏟아 가장 확실한 (첫 번째의) 사건을 만들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투쟁의 역사가 전위미술(avant-garde)을 의식한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과 작업의 과정이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미지물(image-medium)을 참수해야 한다. 쇠사슬에 자신을 투영시킨 소의 머리를 매달아야 한다. 그 실존적인 작업의 태도가 관객의 머리카락을 쭈뼛 세워야 한다. 분명 이미지는 충격적이다. 소가 그려져 있는 벽에 창을 꽂는 원시인에서 스크린에 비춰진 유령의 모습에 놀라는 관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전위적 활동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 누구도 개시의 시점을 모른 채 전위적 삶에 말려들고 있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자유의 날개를 단다. 그(성동훈)는 작은 난로가 있는 작업실에서 날씨와 싸워가며 작업을 한다. 추운 겨울 난로는 작업실을 데우지 못하고 발갛게 달궈져 간다. 그래도 작업은 생산되고 있다. 노동의 즐거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자신에게로 귀결되는 그러한 작업이 타인의 손을 빌리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서 마무리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작가의 성질(character)을 세웠고 자신으로부터 생산된 모든 것에 예민한 칼날로 들이민다. 그 사실은 옳다. 처음 이미지가 탄생하였을 때 수차례 확고한 모습이 되도록 그리고(drawing) 기록(record)하였다. 그가 발견한 이미지가 실재가 될 때, 이미지물은 작가의 피로 수혈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이며 타협하지 않는다. 작업의 역동성은 움직임이 있는 작업으로 전이되어 용접봉에서 튄 감정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변화가 한 시기에 불어왔다. 그리고 난폭한 덩어리의 표면은 매끈한 표면으로 변해 있었다. 갈고 또 갈아 가공된 재료를 무디게 만들었다. 보는 촉감이 표면에서 미끄러지면서 둥글한 끝자리에서 마음을 서린다. 또 다시 그 이면을 보고 철사의 주름에 걸려 넘어진다. 닫힌 덮개의 틈으로 보이는 안(inside)과 그늘선(shaded line)이 훔쳐보게끔 한다.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작은 드로잉이 모여 큰 면을 이루기까지 더 이상 삶은 파편이나 단편이 아니었고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에서 싸워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작은 틈의 기원은 분리가 아니라 서로를 구분시키는 최소한의 숨구멍이었다. 우리가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속사정들이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보이지 않도록 주름을 숨겼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은 야릇한 선이었고 미묘한 곡선과 틈에서 발생하는 인상을 지각하게 하였다. 이러한 이미지물의 변화는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확실해 진다. 미술은 인간의 것이며 작품은 인간의 가공물이다. 작품에서 세오나오는 빛이 어두운 공간을 고유하게 한다. 고유하다는 것 왠지 외롭고 쓸쓸한 처지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구름, 붉은 혈액이 제거된 푸른 사슴. 초기의 작업은 어느새 밖에서 안으로 전위되었고 고상한 비가시적 질료를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반투명한 구슬은 꿰어 이미지의 살(skin)이 되었다. 보다 가벼워졌고 보다 투명해졌다. 시끄러운 언어의 폭력성이 잠잠해졌으며 단지 이미지(가상이라는 의미에서)라는 사실에 유감(有感)이 있었다. 안으로의 점착, 하지만 가시적 질료를 버리지 않은 채, 소리 없는 움직임이 정지해 있었다. 이제 그 살갗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실재의 소리가 이미지물에 부딪혀 찬란하게 깨지게 되는 두 번째의 사건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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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귀는 기울이게 된다. 소리는 덩어리의 틈에서 비집고 나오지 않았나. 소리 역시 얼굴의 구멍을 타고 안으로 들어온다. 언어에 가장 밀착되어 그 음가가 모양을 구성해 낸다. 이미지의 열매다. 풍경을 나무에 달아 흘러가는 바람의 방향에 소리친다. 하늘에서 온 것은 이렇듯 아름답다. 그 사실이 나무에 걸쳐 짐승의 피를 잠재운다. 그만큼 거칠고 억센 쇳덩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뚝 서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땅에서 비롯되었으니 과거 어느 땅의 소리를 팠던 때로 돌아간다. 모든 재료는 땅에서 나왔다. 그것을 불로 녹이고 다듬어 동물의 얼굴을 만들어 냈다. 혹자는 해학적이다, 괴기(grotesque)스럽다고 하였다. 이 시기의 얼굴은 질료에 근접한 이미지였고 무엇보다도 무게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탄 창을 든 돈키호테는 강직한 남근을 우뚝 세우고 있었다. 아마도 야성의 소는 한 남성을 대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내러티브가 파생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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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숨겼다. 슬쩍 들어나는 질감에 어떤 직물(texture)로 찍혀져 나오는데 포장 없이 골조가 다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잘 다듬어진 골상이 진정성을 드러낸다. 소의 머리를 잘라 기단 위에 제물로 바친다. 얼굴, 인식하는 뇌, 그리고 표정을 잠재운다. 그(성동훈)의 작업 앞에서 모든 것을 중단하고 대면하여라. 소의 머리가 사람의 머리가 될 때 얼굴 사이의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며 닫혔던 문이 열리게 된다. 사유의 흐름조차도 질료의 이미지 앞에선 단단한 덩어리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소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결국 작가 자신의 얼굴이 현실에 등장하였고 응시하는 시선 앞에 미적현상으로 자신을 들이대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과 그 뒤의 장치가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보안되어 깊은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소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얼굴이 열릴 때 우리의 말은 소리를 잃고 불편한 지각의 방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각을 하고 인식하는 지점은 거대한 얼굴이 자신의 몸통을 드러내듯 열어젖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그 뒤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도하였던 의도되지 않았던 질료의 덮개를 열 때 밀어내는 강한 소리가 미적체험으로 강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스스로 열리는 힘, 그 원동력은 기술이다. 밀어내는 힘 그리고 끌어당기는 힘의 소리가 들린다. 그 안에 드러나는 것은 잘 다듬은 사물, 동심(童心)을 느끼게 하는 구성과 환상적인 빛이다. 그 머릿속에서 어른의 기괴함과 어린 동심이 만났다. 참으로 감각에 충실하였고 감정에 솔직하였다. 누구든 여기로 다가오면 자신을 열어 부끄럼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닫힌다. 단순한 논리고 단순한 원리지만 우리의 복잡한 사고를 명쾌하게 대응해 준다. 드디어 소리의 현장감을 찾았다. 힘이 발생할 때 소음이 나며 힘을 멈췄을 때 소음도 멈춘다. 그때 잘잘하게 나는 소리가 무대 위에서 파란 조명을 받으며 움직인다. 여기엔 두 가지의 소리가 있었다. 사유 속 상상은 주름진 뇌에서 나는 소리와 같다. 순간 장소를 이동할 수 있고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날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헛된 공상으로 떠돌지 않도록 시작과 끝을 소리로 깨운다. 또한 어떤 비평가가 그(성동훈)의 작업을 유목주의에 대한 공감으로 설명하고 있다.  얼굴 뒤에 꽂혀 유압실린더로 연결된 호스가 흐르는 사유의 유목을 암시한다. 그것은 전기신호를 바탕으로 피스톤과 연접봉을 이동시켜 그토록 원했던 얼굴의 개폐를 가능하게 하였고 사물을 부유하게 하였다. 기술의 이접, 그리고 미술의 이접이다. 비로소 덮개가 열리면 사유의 유목은 시작된다. 예술은 고상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인간본성에 충실할 뿐이다. 한낱 영특해진 예술은 근대미술의 한계를 드러내었고 계급의 층위에서 옹졸해질 뿐이었다. 장소가 같을지라도 시간은 흐른다. 우리가 겁내야 할 것은 낯선 타자가 아니라 변하지 않길 바라고 어색해 하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의 신과 우리의 과학이 그대의 신과 그대의 과학을 부정하였고 까다로운 입맛과 시선으로 노출된 골조와 호스를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자연은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생명의 열매를 놓았으며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로 자유롭게 이동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매우 단순하게 말이다. 열어서 보고 갈아서 만들어 붙이고, 거기서 맺히는 이미지가 유목적 사유였다. 그(성동훈)의 작품에 혈액을 공급하는 유압실린더가 중심과 주변을 와해시켰고 비감상적인 범주에 신경을 쓰게 하였다. 이렇게 쇳덩어리는 이미지가 되어 의식의 소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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