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임-잠자는 자의 시선

조회 수 3230 추천 수 0 2010.10.03 2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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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임-잠자는 자의 시선

 

김용민 | 미술비평

 

한 사람이 길을 가다 문득 거인의 몸을 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이 길에 녹아서 큰 산이 되었다. 그 몸을 걷기 시작한다. 매우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나의 몸과 닮아 있음을 발견해 가며 그 몸을 걷기 시작한다. 옛적 거인이 깨어 있던 실절, 그때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그들의 언어였고 표현이었다. 하늘에서 바람이 불면 숲에 나뭇가지는 흔들거린다.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면 생명의 씨앗이 피어 작은 사람은 피어난다. 누군가가 누구에게로 또 다시 흘러가며 숲의 깊은 대화는 하늘로 올라가 구름길이 된다. 원래 풍경이란 그런 것이었다. 생명이 숨어 있고 생명의 숨을 나눠 마시며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서 저기로 길을 낸다. 처음 그 길을 걸을 때 하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큰 바위를 깨뜨려 보인 그 단면의 층처럼, 누군가가 세상을 보고 싶어 우주를 깨뜨려 그 속에 이야기를 드러냈음이 분명하다. ‘거리(distance)’는 차후에, 우선은 동등한 평면의 ‘주름’이다. 그게 세상을 보고 싶어 했던 한 시선의 경험이었다. 세상은 그와 같거나 그와 다른 세상의 간섭에 의해서 진화한다. 쉽게, 산이 일어서고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기 시작하는 변화다. 거기에 살던 거인은 조금씩 몸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변화하는 지형에서 잠을 잘 수 없다. 그 어디에도 이 큰 몸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거인의 몸은 서서 자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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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풍경은 잠을 자는 자의 세상에 있다. 언어라는 것이 굳이 필요 없는 세상, 그대로 장면으로 남아 수억의 기억의 반점에 부유하는 사물로 남는 것. 시간은 있지만 수만의 시간이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바다로 모인 그 깊고 침잠한 곳. 옛적의 세계와 비슷한 곳으로 풍경은 이동하며 서서히 흘러간다. 먹이를 찾아 하염없이 움직이는 육식동물도 목숨이 다할 때쯤, 그 자리에 머무른다. 힘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다기보다는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숲과 바위처럼. 그 어디에도 그 어느 때에도 죽음은 우리가 폄하한 세상의 이치요, 근원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요, 꿈을 꾸는 것이다. 자연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꿈을 꾸는 기억의 풍경이다. 여기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망각의 바다를 건너온 자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풍경이 담겨있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시야에 펼쳐진 자연 속에서 언어가 되지 못하는 기억의 장면을 본다. 누가 심어 놓았는지, 생명의 씨앗은 또 다른 세대를 보기 좋게 낳았다. 문득 보인 손과 허리. 까마득하게 먼 시절 거인의 몸을 본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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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느질을 잘 하는 사람으로 옆선을 잇는 수고로움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그 풍경엔 시간을 심는 수고로움이 가득했고 그것이 손바느질로 수를 놓듯 한다. 최소한 오래전의 사람을 닮기 위해서는, 그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여기에는 간섭이 없고 사심이 없는 응시가 머물러 쌓여간다. 그 출발에 대한 고민이다. 하늘과 땅 산과 바위, 바다 등 어떻게 샘솟게 되었는지 또한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되고 있는지 그것을 보는 사람과 자연 모두의 응시는 과연 지금에 있지 않았고 서로의 닮은 표정에 있다. 자연이 말하길 우리에게 급할 이유가 없다고 표정 짓는다. 짧은 선들이 속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녹아내리는 것은 순간과 영원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몸의 부분과 전체가 기계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매우 미시적이지만 지극히 거시적인 풍경이 펼쳐져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선과 거리재기를 한다. 그 ‘거리’는 멀리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하늘의 정면, 사람의 발이 땅에 있지 않고 중력을 거부한 시선만이 볼 수 있는 시야다. 그런데 관념의 시선은 아니다. 분명히 세상을 바라본 시선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는 시선이다. 모든 것이 잠자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자연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 것을 깨우는 시선이 아니라 자연 속에 깃들어 잠자고 있는 사람을 닮는 시선이다. 언제나 자연은 인간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의 결정과 행동에 반하는 만큼 반응했다. 지금껏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려고만 했고 그 수단으로 자연 속에 잠든 사람의 본성을 지우려고 하였다. 그래야 손으로 다루기 쉬운 사물이 된다. 그 자연을 어떻게 취해도 죄책감이 없는 그런 것으로. 하늘의 정면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시야가 아니다. 그 어디에도 밀착되어 있지 않는 시선의 위치가 서로의 거리를 비슷이 유지하게 하고 바라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니, 그 안에 사람을 깨우고 저 안에 풍경을 담는다.

 

잠자는 자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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