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포트폴리오_약력 | 작가노트 | 평론 | 이미지 7회 | 6회

 

 

 

7회 개인展

NC 갤러리 | 2006. 12 1(금) ▶ 2006 12.10(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 1511-12번지 1층 NC갤러리 | 051_747_8550

 

 

slash spasce | mixed media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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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sh spasce | mixed media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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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sh spasce | mixed media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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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sh spasce | mixed media | 86×54cm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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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sh spasce | mixed media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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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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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long time ago 160*100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2

 

 

from the long thime ago 117*85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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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long thime ago 72*54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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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go 79*54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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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hole 43*30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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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hole 24*14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3

 

 

time hole 24*14 cm epoxy resin acrylic colo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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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글

이미지, 투명한 공간 사이에 숨다. [2006년 NC 갤러리]

 

이시은 | 홍익대 예술학

 

하루중, 문득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자. 그럴 때마다 우리의 눈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감지된다. 찰나의 순간에도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와 물질의 과잉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줌과 동시에 망설임을 준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선택해야할까, 아니면, 이미지와 물체를 선택해야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자신의 선택일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역시 선택된 표현의 수단이다. 또한 '그린다'는 행위는 대상에 대한 인지적 시각이나 표현, 그 이상이다. 더욱이 오늘의 회화는 과거 서양의 전통 회화에서 그러하듯이 원근법적 공간의 깊이나, 사실주의 회화를 위한 붓 터치와 실감나는 색채를 통한 재현이 아니며, 수많은 변화를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평면 캔버스의 회화를 넘어서 오브제 영역까지 폭 넓게 확장되어 왔다.

미술사학자 뵐플린(Heinrich, Wolfflin)은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회화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회화의 발전은 선적인 것에서 시작되며, 회화적인 명료성과 불확실성 등에 대해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한 다섯 가지의 제시 중에서도 선적인 요소는 공간 표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선의 형성은 형체의 촉각적 요소를 준다고 보았다. 선적인 요소는 형태들을 서로 명료하게 구붓짓게 하는 것으로, 회화적인 이미지와 사물 자체를 넘나드는 요소로까지 작용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선적으로 본다는 것은 형태의 윤곽을 보다 선명하게 함으로 회화의 기본은 선적인 요소에서 시작됨을 강조했다. 이러한 뵐플린의 논의는 익히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킨다. 즉 회화는 더 이상 하나의 평면에만 만족할 수 없는 다양한 형식을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김현식의 작품은 선들을 통해 작업의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투명한 여러 층을 가진 평면과 입체 중간 사이 선들을 사용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이러한  선적인 요소는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김현식의 작품은 선으로 그리는 것, 붓으로 칠하는 것, 물감을 사용하는 것 등에 회화의 기본적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고 구성하는 방법은 익히 현대적 감각과 물성이 짙은 재료로 구성된다. 먼저 잡지에서 이미지를 선택하거나 주변의 물체를 찾아내어 꼴라쥬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과제다. 그리고 선택한 이미지와 물체를 중심으로 여러 층에 선들이 서로 엉켜 있다. 김현식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선의 사용이 돋보이는데, 이는 회화의 기본적인 기법이라 볼 수 있으나, 선을 이용해서 이미지나 대상의 윤곽을 인지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선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일까?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이미지 옆에 색실들을 붙이고 투명한 물질을 덮는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색실로 보인 것들은 그려진 것들이며, 이러한 선들은 투명한 에폭시(Epoxy resin)에 의하여 덮이고 다시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미지를 밑바닥에 깐 다음, 투명한 에폭시를 붓고, 그것이 고착되면 선을 긁어서 색을 입힌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에폭시에 감추어진 선들이 색실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마치 투명한 유리가 주는 착시 현상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에서 이미지의 선택과 선들, 그리고 투명함은 어떠한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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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선들(lines)의 유희

 

작가는 잡지에서 이미지를 선별한다. 그리고 선택한 이미지들을 지우개로 지워 형태와 외곽의 윤곽만을 드러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이미지는 뿌옇게 되면서, 그 명확성을 잃어간다. 마치 아침에 안개가 자욱해 형체만이 남아있을 뿐, 형태의 명확함을 볼 수 없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한 이미지 위에 투명한 에폭시를 부어, 그것이 고착될 때까지를 기다린다. 그런 후에 에칭 칼로 곡선을 그린다. 곡선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엉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로운 선들의 교차점이 형성된다. 마치 머리카락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이미지를 에워싸듯이 움직이는 듯하다.

그리고 선들이 만들어진 틈 사이에 물감을 입힌다. 그 위에 또다시 에폭시를 부어, 고착된 투명함에 다시 곡선을 그려나간다. 그러한 반복을 여러 차례 거쳐 평평하면서도 단단한 오브제 형태의 평면을 만든다. 투명한 에폭시 사이의 선들은 또 다른 선들은 만들고 투과된 틈 사이에서 서로 유희와 자유를 선망한다. 이러한 곡선들의 유희는 단정한 머리카락을 주제 삼았던, 김현식의 <2003년>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이 느껴지는 선들은 마치 율동적 리듬감으로 다음 공간에까지 서로 교차하여 또 다른 선들과 공유한다.

 

이중적 이미지의 교차점 사이에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들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현대인의 모습은 이중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고 했던가. 환경과 공간에 의해 변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대상에 의해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 이 모든 것은 모두 자신에 속한다. 김현식 작가가 잡지에서 선별한 이미지들은 지우개라는 도구로 한 꺼풀 벗겨낸다. 그러면 이미지는 본래의 이미지에서 속살을 벗겨내듯이 본연의 형체로 다시 한번 거듭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하나의 형태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결합된 두 개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남과 여, 구두와 여인, 동물과 사람, 곤충과 얼굴 등에 '이분화'된 이미지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한 이미지를 고착하게 하는 주된 물질은 투명한 물성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고착일 뿐인가.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가. 두 개의 이미지는 서로 결합하여 투명함에 비춰지고 서로 공명하듯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완성된 작품의 이미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실제는 여러 단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겹쳐진 것으로 시간과 공간적 차이가 반복되어 원래 그려진 이미지가 희석되고 또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 것이다. <작가 노트 중>

 

투과된 이미지 사이의 '층'(layer)

 

김현식 작품은 오브제 형식의 두꺼운 지층을 형성한다. 에폭시를 이미지 위에 붓고, 선을 만들기를 반복하여, 이미지와 선들은 투명함 속에서 공간과 공간의 '층'을 만들어낸다. 이미지가 선들의 사이에서 투명함에 서로 투과되고, 시각은 에폭시의 특성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로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와 선들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이 형성되어 서로가 서로에 의해 공명한다. 그리고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그 공간에는 여러 개의 '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투명한 공간 사이에는 경계와 구획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이미지와 선들이 부각될 뿐이다.

이와 같이 김현식의 작품에서 공간과 공간 사이는 마치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교류 등의 '상징적' 의미체계이다. 투명함에서 만들어진 공간 사이에는 서로를 비추어보듯이 비추어지면서 내적인 교차점들은 보이지 않는 선들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성과 함께 고착화되고 만들어진 또 다른 공간의 공유며, 사람의 관계성, 그리고 소통의 관계들이 보이지 않게 형성된다. 어린시절에 먼 이미지의 기억에서부터 현재에 모습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들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공간의 층에는 현재와 과거의 사이를 넘나든 새로운 시각적 언어의 '표상체'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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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행위의 정점

 

이러한 기현식의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프로세스(process)적 양상을 띈다. 시간에 의한 반복적인 행위와 투명한 에폭시로 한층, 한층 싸여져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투명한 물질은 흘러내림과 동시에 고체화를 반복적으로 행한다. 에폭시의 물질이 평평하고 딱딱한 입체를 만들어, 오브제 형식의 촉각성을 기대하지만, 어찌 보면 시각성만이 홀연히 남아있게 된다. 여기서 이미지는 투명함 위에 그저 우연을 기대하는 효과가 아니다. 구성된 조화와 반복된  행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는 반복의 과정을 통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매체 간의 상호관계는 더욱 굳건해 진다. 그리고 다양하게 강한 색체와 이미지들은 에폭시의 투명성으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반복의 행위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동시에 갖는다. 반복이 행위로 행해질 때, 시작이라는 시간과 생성의 의미를 지닌다. 시간이 또 흐르면 행위는 과거의 시간이 되어 소멸된다. 김현식은 자신의 반복적인 행위로 또 다른 자신을 토명함 속에 비춰보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복 행위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또 다른 언어로 연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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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시간성과 공간성 [2005년 인사 갤러리]

 

김용민 | 미학

 

시간의 단편들 속에 선들이 고착되어 묻히고 묻힌다. 마치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드러난 나의 모습 혹은 너의 모습을 통하여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듯이 현전에 묻힌 과거들을 증거하고 있다. 손에 잡힐 것같이 투명하지만 건널 수 없는 막을 형성하고 이것이 바로 시간의 조각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파편의 모습이 얼핏 하나의 있음으로 보이며 듣지 못하는 가시적 세계에 대고 말을 붙인다. 이것이 평면성에서의 일루전의 역사였으며 하지만 일루전의 극복이 무겁고 어마어마한 물성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더욱 더 진실에서 멀어져 간다. 아는 것과 있는 것의 간극은 초월된 자들에겐 무의미한 것이지만 늘 무언가 부족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간극을 잇고자 하는 욕망이 자신도 모르게 삶을 이끌어간다.

 

매개됨. 우리는 삶이라는 공간에 있으며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시간의 단편들이 무수히 조각나기시작 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세계일반의 시선으로 봤을 때 바로 그 시선이야 말로 시간의 단편들 다시 말해서 현전을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수학적 논리학 방식의 사유과정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며 어떻게 만들어진 나가 만든 나를 감싸 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만든 나는 만들어진 나에게 허락한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감각의 덩어리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거대한 사건은 우리의 먼저 된 자유스러운 의지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며 쉽게, 무엇을 보기 위해 보는 것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우선하기 때문에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며 느끼길 원하기 때문에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바로 고리의 역할을 하며 비로소 평면들을 공간으로 끌어 낼 수 있다. 이것은 어느 한 면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속성을 유지한 채 모든 것이 자유롭다.

 

이번 인사갤러리에서 김현식의 전시된 작품을 보고 일반적이지 않는 다른 시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캔버스를 대할 때 어떤 작가에게는 이미지가 우선하며 또 어떤 작가에게는 조형적 요소를 우선하게 된다. 아니면 이슈나 심미적 환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김현식의 작품은 이미지를 앞서며 조형성을 앞선다. 즉, 사변의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작업방식에 철학적 물음이 들어간 것이며 철학적 물음이란 ‘나는 누구인가’로 소급되는데 존재의 본질이 현존함으로 증명되겠으나 현존함에 있어 많은 조건이 따라붙는다. 이것은 나는 ‘누구누구’ 이다. 라는 것이며 김현식의 작품에 있어서는 투명한 에폭시의 층층이 새겨진 실타래 같은 선들이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시선의 고리가 삶이라는 공간성 즉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규정한다. 물론 이러한 규정이 우리 자신의 본질 그 자체라고 단정할 수 없겠으나 단지 현상의 가시적 세계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현식의 작품에서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는 에폭시의 투명함은 시간의 단편들을 꿰뚫는 역할을 한다. 내장이 다 드러나 보이는 해파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의 시선은 작품의 겉 표현을 부딪쳐 구석 구석을 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속의 선들로 알 수 있듯이 만질 수 없는 층과 층 사이를 그 어떤 선도 통과 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을 잇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며 보여지는 시선에 의해 단편적 회화 작품이 공간성을 획득하였다. 실타래 같은 많은 선들. 이것은 자유스러운 시선의 위치에 의해서 고착된 층 속에서 서로 관계하며 살아있게끔 한다.

 

이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제현의 미적체험에 그칠 수 없으며 역사의 흐름에 의해 인식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인식의 감상이란 다른 실험관찰이나 놀이체험, 수학문제풀이에서 오는 인식의 작용과는 다르다. 예술에서는 우리의 시선이 작품의 인식 대상이 되었으며 자유스러운 우리의 시선은 작품이 요청하는 현상에 봉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현식의 작품은 사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자신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수없이 엉켜져 있는 실타래는 사실 엉켜져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에폭시의 투명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을 현실의 공간에 적용시켜 봤을 때 우리의 시선은 저마다 달라서 보는 각도나 다른 시선에 의해서 보지만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즉, 지금 현상하고 있는 것에 시선은 집중하며 그것을 통하여 입체적으로 보이는 김현식의 작품처럼 이제 단편화된 시선은 공간 속에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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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물성으로 현대의 정체성 찾기

 

김미진 | 조형예술학 박사, 홍익대겸임교수

 

 

오늘의 화가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미술의 역사를 끌어온 회화는 평면이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에 현대의 다른 장르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문학의 장르에서 시가 모체가 되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술의 원초적 표현 행위이고 따라서 회화는 영원히 시각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로 존재할 것이다.

김현식은 작가로서 그린다는 행위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오늘의 작가다.

2003년부터 작업해온 뉘앙스시리즈는 물감과 붓, 캔버스를 벗어나 현대적 질료를 사용해 칠하며 드로잉된 것들이다. 그가 주로 다루는 재료는 잡지와 투명 레진, 그리고 아크릴물감이다. 먼저 바탕의 종이 위에 잡지를 무작위로 붙이며 꼴라주한다. 잡지이미지는 현대에서 생산된 이미지와 언어들이며 이것의 꼴라쥬로 만들어진 배경은 그들의 정체성이 함께 엉켜 거대한 물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복잡하고 거대한 물성의 세계에서 비워가는 지적인 현대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듯 김현식은 지우개로 지워나간다. 물성은 무작위의 지우개 드로잉으로 회화적 성질로 전환되며 정화되어, 근원적이며 시적환경을 만들어낸다. 드러난 이미지와 지워진 이미지 그리고 겹쳐진 것들 사이에서 드러난 마티에르의 미묘하면서 섬세함은 회화의 기초적 조형감각의 재미를 부여한다. 김현식은 그 위에 투명한 레진을 붓고 이미지를 고정시키며 리얼세계에서 화면너머의 세계, 객관화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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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이미지를 드러낸 공간유희

 

작가는 숨겨진 이미지를 드러내며 공간의 유희를 즐길 작업을 시도한다. 가상의 세계, 고착된 세계는 또 다시 드로잉과 이미지 찾기의 반복으로 생명을 얻는다. 두꺼운 레진 판에서 긁혀져 드로잉된 선은 에칭의 효과처럼 물감을 먹고 배경의 두께를 공평하게 유지하며 또 다시 객관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잡지에서 근거한 동물이나 인체의 형태가 섬세하게 그려지고  다시 그 위를 덮는 투명레진에 의해 고정화된다. 이 작업은 대 여섯 차례로 반복되며 선이나 구체적 형태는 겹쳐져 보이거나 입체적으로 보이고 결국 하나의 두꺼운 레진으로 만들어진 평면에서 한 이미지로 보여 진다. 김현식은 부조에서 보여 지는 입체적 형태와  촉각적 형태를 레진의 투명성으로 평면화 시켜 회화로 보이게 한다. 겹쳐진 이미지들은 정형화되어 이집트나 고대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형태를 띠고 있고 공간의 두께로 인해 묘하게 정지되어 고요한 시공간의 지층을 느끼게 된다. 남과 여, 흑과 백, 앞과 뒤, 동물과 사람, 곤충과 얼굴은 이분화 되어 연결되어 있고 단순하고 간결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매우 현대적인 재료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고대벽화의 느낌을 준다.

김현식은 지우고, 그리고, 긁고, 붓고를 반복하며 장인이 만들어낸 수 공예적 형태와 쉽게 결정해 버리는 레진의 매력에 빠져 들어가 물성에 의해 휘둘리기도 한다. 하지만 장인적 정신과 실험성을 모두 다 갖추고 있는 작가로 시간을 운용하는 작업인 만큼 객관적 비평과 함께 작업해 나가면 현대적 평면을 표현해 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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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 흐름으로 보여준 새로운 조형미제시

 

대표적 작품으로 작은 사각형 크기 안에  개와 여자의 이미지가 연결된 작업은 매우 아름답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보여 진다.

다양한 이미지가 깔린 푸른색과 검은색이 드러나게 드로잉 된 배경과 오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개의 두상, 그것을 연결하는 바랜 색깔의 개 몸통, 뛰어 들어가는 듯 하는 모습의 치마를 입은 여성의 하체부분은 서로의 공간을 침투해 각자의 공간은 침투되어 결국 하나의 공간으로 멈춰버려 낯설고 새로운 시공간을 만든다. 개 뒷다리와 여성의 다리는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얼룩무늬를 갖고 있는 개의 모습과 얼룩무늬치마는 흑백의 대비를 이루어 화면에 착시를 유발하며 새로운 조형미를 제시한다.

몇 백 년 동안 미술사에서 공간의 유희는 화가들의 주제였고 사진으로 인해 추상으로 발전되었으며 평면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을 물질로서 해결해나가야 했던 20세기 말에서 정보의 혁명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맞은 21세기를 겪고 있는 김현식은 투명한 새로운 질료로 입체와 시간, 공간을 단숨에 해결해 복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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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그려져 만들어진 분위기로 포스트모던을 실천한 작업  

 

과거의 사물들과 현상들은 역할과 모델을 제시하지만 현재의 하이텍스트의 세계에서는 배열과 조합으로 과거와 현재를, 서로 다른 공간을 교류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에서는 인종과 국적, 나이를 초월하며 서로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또 연결해 외부 공간에서도 만남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자연의 종들은 많이 사라지며 역사에서나 존재하게 되고 많은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며 또 더욱 생산은 가속화되며 언어뿐만 아니라  규범에서도 정의하기가  힘들어진다. 현대인들의 삶에서 현실과 가상의 시공간이 모호한 시점 그는 켜켜이 그려져 만들어진 분위기로서 현재의 우리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잡지의 이미지들, 드로잉, 인물과 생물, 사물들은 중복된 공간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수정을 통해 완성된다. 레진을 한층 씩 입힘으로 추상적이며 단절된 공간은 서로 소통하며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되어간다. 결과는 중복된 이미지지만 결국 하나의 시공간에 얽혀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김현식은 문명의 역사가 만들어 낸 모든 기호적 체계를 분위기로 연결해 전체를 만들어나가는 논리적 작가이다. 동시에 그가 만들어낸 분위기는 우연적 체계역시 제시함으로 거대한 세계의 법칙을 담아내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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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작업에 대한 약간의 생각들

 

이숙경 | 예술학,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우리가 처음 작가 김현식의 작업에서 느꼈던 그로테스크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인상은 유물론적 의미론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을 때 비로소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삼차원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입체효과를 지닌 회화에 가깝다. 하지만 단순히 시각적인 회화는 아니다. 그것은 물질성을 지니고 있고, 일종의 촉각성을 갖고 있다. 물론 모든 회화는 물질성을 갖고 있지만, 이 작가는 물질성 그 자체를 의미와 동등한 차원에서 놓고 작업하기 때문에 특별히 이런 면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의미가 물질의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것과 같은 작업을 대할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의미의 비개념적, 비정신적 근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의 조직된 의미의 그물망과는 다른 것, 물질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의미, 그것을 대할 때 우리가 처음 느끼는 감정이 그로테스크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 않을까?

그의 작업의 장점은 산문적이고 시차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직관적으로, 그러나 물질과 개념 사이에 있는 미묘하고 복잡한 층위들을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긴장감 있게, 그리고 풍부하게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형적 제어력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안정되어 보이는데, 그것은 그가 다양한 재료와 형식들을 정돈시키는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그는 논리 대 비논리, 남성 대 여성, 이성 대 감성, 역사 대 자연 등의 대립되는 개념들이 이차원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통합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대립항의 균열 속에서 발생하여 억압된 상황의 원형으로 작용하는 그림자는 그의 작품 속에서 물거품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책과 물이라는 대립적 요소들의 조화로운 봉합을 추구하는 작가의 의지이기도 하다. 합리적 이성의 발전과 역사의 궤적을 담고 있는 ‘책’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을 대표하는 ‘물’, 그리고 이것들 사이에 표류하는 ‘물거품’은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있어서 이 세가지 상징은 보다 특별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음양적 합일’이라 일컫는다. 서구 사상의 하나인 변증법이 이원적 대립항을 전재로 하여 이들간의 지양을 발전의 단계로 보는 것과는 달리, 김현식은 하나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는 역설이 성립되는 성숙한 합일을 우리의 전통철학인 음양론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단순한 양식적 차용을 전통계승이라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그는, 보편적인 문화와 문명, 혹은 정신사 속에서 전통 해석을 추구한다. <지고-그림자>라는 테마의 지향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사상 속에서 발견되는 통합과 조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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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속에 나타나는 시간성

 

코리아 아트

 

독특한 오브제를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김현식은 고체가 된 에폭시를 긁는 작업을 선보인다. 물리적 압박과 밀착에서 나오는 흔적 그리고 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전의 밀가루 주머니를 이용한 압착작업에서는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를 에폭시 수지에 밀어붙여 놓은 뒤 마르면 떼어내는 것이었다. 이번 작업 역시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이지만, 약간 다른 구석이 있다. 김현식의 작업은 단순히 그려낸다기보다 에폭시 작업으로 몰두하는 듯하다. 작업은 이집트의 벽화, 신문의 사진들, 그리고 활자화된 신문이나 잡지의 조각들 등 다양하다. 추상적인 화면도 있고 추상과 구상이 어우러진 작업도 있다. 작가는 물질의 물리적 힘보다 흔적과 시간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추상적인 선의 느낌은 그런 특징을 순수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작업 주제는 이미지 자체라기보다 흐름과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작업은 평면보다 두꺼운 부피를 갖고 ‘보태는’ 형식이 된다. 하지만 더해진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형체를 묻어버리면서 작업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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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부산시립미술관 특별기획 인공/생명전

조선녕 |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

 

김현식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오브제를 이용한 부조적 성격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에폭시 수지와 면 주머니들을 이용해 작은 네모꼴의 반입체물들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 벽에 걸었다. 시장에서 사온 갖가지 모양과 문양의 천들이 많이 사용되어 현란하기까지 하다. 아주 작은 네모들이 190개 걸려있는 메인 작품은 멀리서보면 마치 박테리아나 미생물들이 꿈틀대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고, 그 좌우로 늘어서 조금 더 큰 네모들은 생명체의 내장을 표본화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에폭시 수지가 마르기 전에 자루에 가득 밀가루를 넣고 아크릴 판에 부어넣은 에폭시 수지 위로 자루를 힘껏 패대기친다. 그리고 수지가 마를 때를 기다려 자루를 떼어낸다. 그리고 아크릴을 떼어내면 완성이다. 뒷면에서 보면 에폭시 수지에 자루들이 납작 눌린 것처럼 보인다. 빈틈없이 자루들을 서로 밀착시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 서로 포개져 숨막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의 작품들은 직설적으로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거기서 미완의 생명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유기체임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유기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면 친근감보다 흔히 반발감을 갖는다. 김현식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수지 작품들은 유기체, 그것도 외면이 아니라 유기체의 내피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현미경으로 꿈틀대는 생명체의 단편들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특정한 물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존엄성을 상실하고 한낮 물건처럼 서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는 그의 작품들에서 뭔가 지금 막 에너지를 얻어서 태어나려고 하는 생명체의 느낌을 알아볼 수 있다. 수지에다 자루를 밀어붙여 작품을 만드는 공정 자체가 우연한 충격에 의해 우연한 모습을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전혀 똑같지 않은 무수히 많은 현태의 자루모양들이 나온다. 반면 똑같은 규격으로 제작된 고형 수지의 네모난 모습들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반복을 암시한다. 생명은 태어나려고 하지만, 금방 이 반복의 상자속에 갇혀 마치 박물관의 표본실처럼 늘어서 있다. 하지만 완전히 자유롭게 풀어져 있었다면 우리는 거기서 이 작품에서와 같은 긴장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복과 개성, 에너지와 틀, 압착의 힘과 분출의 힘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이 작품을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하나하나는 불규칙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지만 전체적으로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이작품의 구조는 안정과 불안정 사이를 오가면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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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기와 빼기

 

이승영 기자 | 월간 미술세계

 

회화와 입체의 장르가 모호해진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고, 현대미술에서 굳이 장르를 따지는 사람도 이젠 없다. 그만큼 어떤 장르가 주는 의미보다 작품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 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현식의 네 번째 개인전에서도 장르가 모호한 아니 의미 없는 장르가 개입되지 않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단순히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에폭시를 이용한 오브제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유동성과 변형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우선 밀가루 주머니를 이용한 압착 작업을 보면 아크릴 상자 안에 액체의 에폭시를 붓고 밀가루 주머니를 넣어 형태를 만든다. 그 형태의 기본은 작가가 의도하지만 의도하는 형태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변형은 시작되고 그 변형에서 작가는 에폭시의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사각으로 만들어진 아크릴 상자 안에 들어있는 액체의 에폭시가 굳어가면서 밀가루 주머니의 형태는 또 한번 변형의 단계를 거치게 되고 에폭시가 고체로 변했을 때 밀가루 주머니 속의 밀가루를 빼내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마치 각박한 현실에 짓눌린 자신 또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데, 물리적인 힘에 의해 파생된 흔적이라고 할까.

축적된 일상의 미감은 인고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화려한 색조도 농익은 깊이만큼 숙성되어진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 김현식은 압착작업 외에도 이미 고체가 된 에폭시의 표면을 긁는 작업을 선보였다. 종이 위에 에폭시 수지를 평평하게 붓는다. 이것이 다 마르면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긁은 다음 다시 에폭시를 붓고, 마른 다음 뾰족한 못 같은 것으로 표면을 긁은 뒤 물감을 붓고 다시 닦아내는...

이런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된 후 완성된 작품은 여러 겹의 에폭시 층이 얽혀서 정확한 형태를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보태거나 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모호함과 불분명함, 그것이 김현식 작업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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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간 (공간)이 만나는 곳 - Time Hole

 

물질, 소비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이 뒤엉켜 있으며 무수한 이미지들이 그 속에서 생성 / 소멸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기억 속에도 문득 문득 시간의 전후가 없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직 접적인 연관이나 의미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고 또는 사리지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한 점에서 만나고 사라지는 곳 모든 것들(시간, 공간, 정신, 물질 등)이 빨려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곳 - 우리의 의식 무의식이 만나는 경계의 선을 Time Hole이라 명한다.

작업표현으로는 두개의 아무 연관이 없는 이미지들을 한 곳에서 겹친다.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의 데페이즈망(depayserment)처럼, 하지만 두 이미지는 하나의 시간(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 있으며 절대 만나지 않는다. (줄곧 투명 합성수지 작업을 통해 다른 공간들이 층층이 겹쳐 보이게 하려 했으며 촉각적으로는 평면이지만 시각적으론 공간인 반 입체/반평면작업을 해 왔다.)

새롭게 조합된 이미지들의 배경은 가득 채운 가는 실선들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결국 하나의 선(끈)으로 이어져 시간의 연속성을 나타내려 했다.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각각의 고유한 의미를 퇴색한 채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나타나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생산하는 가는 중요치 않으며 나는 단지 타자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던져 놓을 뿐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무수한 새로운 이미지들은 시간(공간)에 상관없이 만들어졌다 사라져 간다. 그 속에서 예술은 무엇일까? 복잡한 물음에 잠시 비켜서서 생각해 보면  마치 밤하늘 별을 올려다 보면서 제 각각의 해석과 의미를 새기를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자기만의 시간(경계) 사이에서 번뇌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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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오래전부터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는 만난 것은 평면(회화)이면서도 평면이 아닌 것- 촉각적으로는 평면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입체적인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찿은 재료가 투명성과 수용성이 뛰어난 Epoxy resin 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요소, 평면과 입체의 모호한 경계가 지금까지 작업의 단초가 되었다. 평면성과 입체성을 띠고 있지만  일반적인 회화나 입체의 성질과는 다른 반(反)평면적이고 반(反)입체적인 성격을 주요 원동력으로 두 영역(세계)의 경계에서 많은 실험과 시간을 보내왔다. 두 영역의 경계 대한 관심은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며 살지 않았던 삶과 대학 때,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방황했던 시간들이 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평면/ 입체 외에  또 하나의 구조는 다른 시간(공간)과 다른 시간(공간)과의 만남이다. 평면위에 입체적 표현은 하나의 평면층이 만들어진 후 또 다른  평면층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반복으로 시간의 흔적이 겹쳐져 작품이 만들어진다.

완성된 작품의 이미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실제는 여러 단면위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겹쳐진 것으로 시간과 공간적 차이가 반복되어 원래 그려진 이미지가 희석되고 변형되어 또 다른 이미지(세계)로 나타난 것이다.

평면/입체, 시간(공간)/시간(공간)의 만남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기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두 세계의 만남이 연결될 수 있는 통로는 무엇일까?

새로운 공간(세계)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고리는 연결, 소통, 교류 등의 의미- 이어준다, ‘스민다’ 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화면 가득히 선이나 미묘한 터치들을 사용했다. 여러 개의 공간속에 갇혀져 있는 이미지들은 이어질 수 없는 단면으로 이뤄져 있지만 우리의 시선들은 투명한 막을 아무런 불편 없이 통과해 서로를 연결시켜 새로운 이미지(세계)를 만든다. 결국 마지막은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실크로드를 오랬 동안 동경해 왔고 언젠가 그 길을 여행하고 싶다.

실크로드는 서로의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소통의 상징이자 신세계에 대한 기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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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

 

개인전  

2006 slash spasce NC 갤러리, 부산2005 'Nuance' 인사갤러리 . 서울 | 2003 Time Hole' 엄태익 갤러리 . 부산 | 2002 '지고 - 아주 오래전부터' 인사갤러리 . 서울 | 2000 '지고 - 얼룩강아지가 소녀처럼 웃었다' 대안공간 섬 갤러리 . 부산 | 1995 '지고 - 그림자' 보다 갤러리 . 서울 | 1993 '지고 - 여행' 삼정아트스페이스 . 서울

 

단체전

2006 Another 시청 갤러리, 부산 | 2006 청담미술제, 서울옥션, 서울 | 2006 40-움직임 33인전, 갤러리자미원, 부산 | 2006 와 人, 프랑스문화원, 부산 | 2006 가다-두 번째 이야기, 보우갤러리, 울산

2005 작은그림전, 보우 개럴리, 울산 | 2005 21세기 아시아 현대 미술전, christies HongKong | 2005 ARTSINGAPORE2005, 콘택시티 컨밴션센터, 싱가폴 | 2005 오아시스를 찾아서, 롯데화랑, 부산 | 2005 크리슽, 소더비 옥션작가 초대전, 표화랑, 국민응행 PB센터 | 2005 겨자씨의 외출, 피카소 갤러리, 부산 | 2004 함께 건너는 다리전, 을숙도문화회관, 부산 | 2004 DADA전, 문화회관, 울산 2004 ‘기억, 기록’ 시청갤러리 . 부산

2003 '현대작가-3차원전' 열린화랑 . 부산 | 2003 ‘SALE전’ 현대아트갤러리 . 울산 | 2003 '줄탁동시전' 금정문화회관 . 부산 | 2003 '부산현대작가전' 시청갤러리 . 부산

2002 ‘HAND IN HAND' 심여화랑 . 서울 | 2002 '일회용품전' 유우갤러리 . 부산

2001 '부산현대작가전' 문화회관 . 부산 | 2001 '엄태익갤러리 개관기념전' 엄태익갤러리 . 부산 | 2001 '가을동화전'  . A&D갤러리 . 울산 | 2001 'PCAG&TAC' 현대미술교류전 예술회관 . 대구 | 2001 '인공/생명전' 시립미술관 . 부산 | 2001 '6인 입체+평면전' 대안공간 마루 . 창원 | 2001 '9시 뉴스전' 롯데갤러리 . 부산, 광주

2000 '20인 200호전' 성산아트홀 . 창원 | 2000 '현대작가전' 현대아트갤러리 . 울산 | 2000 '새아침을 열며' 현대예술관 . 울산

1999 '삶, 권력, 죽음전' 대안공간 섬 갤러리. 부산 | 1999 'MESS전' 피카소 갤러리 . 부산 | 1999 '부산현대작가전' 문화회관 . 부산 | 1999 '홍익전' 현대예술관 . 울산 | 1999 '울산예고 교,강사전' 현대예술관 . 울산

1998 '21C청년작가전' 여의도 . 서울 | 1998 '홍익전' 문화회관 . 울산

1997 '울산예고 교,강사전' 문화회관 . 울산

1996 '신체없는 기관, 기관들' 금호갤러리 개관 기념전 . 서울

1994 '정신이 투영된 인간의 모습전' 동호갤러리 . 서울

1993 '다시그림전' 사각갤러리 . 서울

1992 '다시그림전' 청남아트스페이스 . 서울

1989 'Indepents전' 국립현대미술관 . 과천

1986 'Indepents전' 국립현대미술관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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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imhyunsik-김현식-1